누구나 한 번쯤은 아무런 목표 없이 단순히 앞만 보고 걸어갔던 시절이 있을 것이다. 그 시절에 느끼는 감정은 흔히 막연함, 두려움, 혹은 불안함이다. 하지만, 그러한 시절이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서히 전환되기도 하고, 어떠한 특별한 계기를 통해 전환되기도 한다. 나에게도 암흑과도 같은 그러한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이를 통째로 뒤바꿔준 특별한 계기 또한 존재한다. 나는 그때의 내가 나의 인생 중에서 가장 빛났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장 빛나던 순간은 요양원에 봉사활동을 갔을 때다.
고등학생 시절, 꿈도 목표도 없던 나는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대학 입시를 위한 공부와 생활기록부에 활동 내용 채우기 뿐이었다. 반복되는 일상에 싫증을 느끼면서도 어느 것 하나 포기할 수 없는 스스로가 답답했다. 이러한 생각에 힘들어하고 있을 시기에 담임 선생님께서 요양원 봉사활동을 추천해주셨다. 봉사활동 시간을 채우기 위해 나는 망설임 없이 지원했고, 아무 생각 없이 요양원으로 갔다. 그렇게 요양원에 도착한 내가 처음 마주한 것은 요양보호사분들의 차가운 시선이었다. 아무런 이유도 모른 채 차가운 시선을 받으며 맡은 일을 수행해야만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 한편에 답답함이 자리 잡았다. 이유라도 알고 싶었지만, 누군가에게 물어볼 용기가 쉽게 생기지 않았다. 그렇게 오전 업무가 끝나갈 때까지 나는 아무것도 물어보지 못한 채 차가운 공기 속에서 묵묵히 주어진 일만을 열심히 수행했다. 업무를 처리하는 내내 내가 가장 많이 느낀 감정은 속상함이었다.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으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다름없음을 느낄 때마다 속상함이 밀려왔다. 단순히 봉사활동 시간을 채우기 위해 요양원에 온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 채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오랜 시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요양보호사분께 이유를 여쭤보았다. 조심스러운 나의 물음에 요양보호사분께서는 그 이유에 대해 천천히 설명해주셨다. 지난 몇 년간 봉사활동을 하러 온 사람들은 무수히 많았지만, 다시 찾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어르신들께 많은 정을 주고 또 온다는 약속을 하고는 이를 모두가 지키지 않았던 것이었다. 정이 많이 든 봉사자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어르신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먹먹하고 속상해진다고 하셨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봉사활동을 하러 온 봉사자들을 반길 수 없게 된 것이었다.
나는 이야기가 모두 끝날 때까지 차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봉사의 참된 의미조차 무엇인지 모르고 단순히 이익을 위해 이곳에 온 내가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그때부터 내가 이곳에서 무엇을 해야 하고 할 수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모두에게 먼저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던 나는 점심시간에 급식 봉사를 지원했다. 급식 봉사는 암흑과도 같은 시기를 겪고 있던 내가 처음으로 하고 싶어 했던 일이었고, 처음으로 하고 싶다고 말한 일이었다. 급식 봉사를 하면서 요양원의 모든 사람과 눈을 맞췄고, 가벼운 인사를 나누었다. 먼저 다가가 밝게 웃는 나의 모습에 하나둘씩 천천히 마음을 열어주셨다. 그렇게 점심 시간이 끝나고 오후 업무를 신속하게 처리한 나는 어르신들의 말동무가 되어드렸다. 필요한 것이 있는지 여쭙고, 가벼운 산책을 하며 중간중간 간식을 먹여드리는 모든 순간이 기쁘고, 감사했다. 사소한 것에도 밝게 웃어주시고 예쁘다고 해주시는 모습을 보며 보람과 행복을 느꼈다.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어르신들의 말동무가 되어드리다 보니 어느새 돌아가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거웠지만, 다시 꼭 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날 이후 나는 매주 주말마다 요양원에 가서 어르신들의 말동무가 되어드렸다. 봉사 시간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닌 어르신들의 작은 행복이 되어드리기 위함이었다. 그곳에서의 나는 언제나 행복한 사람이었고, 빛나는 사람이었다.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얻는 행복감을 모두와 나누었고, 아낌없이 표현했다. 내가 느낀 이러한 행복은 나의 일상생활과 가치관까지도 통째로 바꿔주었다. 해야 하는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기 시작했고, 나만을 위한 일보다 모두를 위한 일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크고 작은 목표를 세워 하나둘씩 이뤄갔다. 목표 없이 앞만 보고 걸어갔던 나는 어느 순간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요양원에서의 봉사활동을 계기로 나는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자 빛나는 사람이라고 자부할 수 있게 되었다.
함륜경(국어교육과·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