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해지고 싶은 것
슬픔은 일상에서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우리는 슬픔과 어떤 사건을 함께 엮어서 얘기하곤 한다. 마치 특별한 감정 같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슬픔이 일상적인 감정 같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에겐 말이다. 내 기억은 과거로 갈수록 행복의 감정들이, 현재로 올수록 부정적 감정들이 늘어난다. 그렇게 살고자 한 건 아니었다. 다만 해가 지나면서 나는 더 많은 사람을 만나야 했고 그만큼 인간관계에서 오는 상처들은 늘어났다. 예전과는 다르게 말이다.
언제부턴가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게 설레지 않았다. 사람들은 서로의 입맛에 맞춰 무리를 만들었고 그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그렇게 힘들게 만들어진 무리도 영원히 지속되진 않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친하게 지내던 이들이 오늘은 서로에게 가시 돋친 말들을 던져대기도 했고, 같이 어울려 지냈다는 것만으로 안 좋은 말을 들어야 했고 무시당해야 했다. 언젠가 한 친구가 나에게 자신이 싫어하는 친구와 어울려 지내지 말 것을 강요한 적이 있다. 내가 자신의 물건인 양 자기 옆에 묶어 두려 했다. 너무 화가 났고 답답했기에 결국 하고 싶은 말을 던지고 다시는 그 친구와 마주하지 않았다. ‘왜 사람은 편을 나누려 할까?’ 지금까지도 나에게 던지고 있는 질문이다. 하지만 아직 납득할 만한 답은 찾지 못했다.
인간관계에 있어 뼈저리게 느끼게 된 건 사람이 사람에게 바라는 것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이다. 아주 어릴 적 아무 조건 없던 그런 관계들은 사라져가고 있었다. 나는 이게 너무나도 슬프고, 또 무섭다. 누군가 나에게 웃는 얼굴로 먼저 다가오면 그 순간은 안도한다. 하지만 나중엔 불안해진다. “저 사람이 나에게 무언가 바라고 있는 건 아닐까?”하고. 그러다 어느 순간 그 사람의 속마음을 알아채게 되면 “그럼 그렇지”하고 이상하게도 안도하는 나의 모습을 보게 된다. 거기서 왜 안도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나는 그렇게 되어 버렸다.
위에서 말한 모든 것을 관통하는,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질문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너도 그런 사람이지 않니?’이다. 나도 사실 편을 나누고 있는 건 아닐까?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바라고 다가가고 있는 건 아닐까? 꼭 직면해봐야 할 문제일 것 같아서 여러 번 마주 보려 해 봤지만 성공한 적은 없다. 그 성공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말이다. 나를 슬프게 하는 저 사람들처럼 나도 사실은 누군가를 슬프게 하고 있진 않을까?
지금의 나는 주변 사람과 벽을 만드는데 익숙해져 버렸다.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일단 한 발짝 물러서고 시작한다. 누군가 나에게 빠른 속도로 다가오면 그 속도에 겁을 먹고 숨어버린다. 누군가는 이런 나의 모습을 한심하게 보겠지만, 이미 많은 것에 지쳐버린 지금의 나에게 이것이 나를 보호하는 방식이고 내 마음에 괜한 파동을 일으키지 않는 방법이라고 믿고 있다. 조금 외롭더라도 지금 이 상태가 좋다. 그 어떤 물결도 일지 않은 지금 이 잔잔한 상태가 좋다.
류수현(간호학과·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