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어쩌면 빈껍데기로 살았다

2019-06-05     이아름 기자

  ‘명함’ 종이 한 장으로 나를 표현할 수 있다는 건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것도 21살에 얻은 명함은 사람들 시선을 잡기에 충분하고 신선했다. 명예를 가진 사람은 다른 누군가와 같은 말을 하더라도 신뢰도가 천양지차로 다르다. 명함을 가진 대학신문 기자로 사는 일은 매일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다. 과정과 달리 결과는 ‘똑똑하고 멋진 사람’. 거기에 힘입어 기자는 남들 눈에 더 멋지게 사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잘사는 것처럼 보여주는 일은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를 치장해 주었던 껍데기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남들 눈치를 보며 사는 일은 남는 것도 없고 꽤 큰 감정 소모를 일으킨다는 걸 알게 되었다.

  기자의 마음이 엉망이 된 와중에도 지인들의 부탁 하나도 쉽게 거절하지 못해 끙끙 앓았다. 바보 같은 일들이 많아졌다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늦었었다. 어느 순간부터 기자가 불리함을 말해야 할 상황임에도 쉽게 나서지 못하며 숨어버리는 모습을 보였다. 스스로가 답답해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다가 “너 바보냐? 진짜 넌 호구다. 남 눈치 그만 보고 너를 위해 살아.”란 예상치 못한 답변에 머리를 세게 맞은 기분이었다. 스스로 남 눈치를 보며 산다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에 적잖이 충격이었다. 기자의 텅 빈 마음을 들켜버렸다. 이미 내 주위 사람들은 기자가 빈껍데기일 뿐이라는 걸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무서웠다.

  누군가를 좋아하기 전에 나를 먼저 사랑하라는 말이 있다. 솔직히 글을 쓰는 이 순간까지도 기자는 자신을 사랑하는지 모르겠다. 최근 기자는 한 달에 3번의 악몽 같은 일들을 겪었다. 올해 5월은 최악의 달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초반에 겪은 2번의 일은 기자로서 성장하는 일이라며 합리화했다. 학보사 기자와 학생으로서의 일, 인간관계에 지쳐 방심하던 순간에 일이 터져 버렸다. 하룻밤 사이에 기자는 글로 인해 한 집단에 이상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기사는 글에 포함된 조사 하나도 조심해야 하는데 그 사람들은 한 사람을 매장해버리는 공포소설을 써놓았다.

  기자는 너무 화가 나고 억울했다. 사건은 자신들이 글에 무지했다는 인정과 사과로 정리되었다. 사건은 일단락되었지만 기자가 일상생활도 하지 못할 만큼 힘들어할 때 한 친구가 해준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나온 말 있잖아. 인생에서 가장 큰 시련이 오는 건, 한 번씩 진짜 내 편이랑 가짜 내 편을 거르라는 큰 기회라는 말이 있잖아. 지금은 이렇게 힘들어도 생각해보면 그런 거 아닐까?” 빈껍데기인 기자 주위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에게 받는 사랑만으로 나 자신을 사랑한다고 착각했다. 이제는 기자 스스로 흘러넘칠 만큼 그들을 사랑해주고 싶다. 기자가 좋아하는, 사랑하게 될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어주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