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썼다 지웠다

2019-02-20     윤은진 기자

  나는 오늘 종일 뒹굴뒹굴했다. 이렇게 첫 문장을 쓰면 선생님은 항상 나는 오늘로 시작하는 일기는 쓰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이건 내 불변의 공식 같은 거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 말을 따랐다. 기자에게 글쓰기란 이도 저도 아닐 때 채우는 하찮은 구원투수였다. 일기 쓰기가 귀찮아 짧은 시로 대체하고, 교내 대회에 낼 그림 그리기가 싫어서 글짓기로 때웠다. 그런데 그날 학생 기자 모집 대자보가 왜 그렇게 눈에 띄었는지 모르겠다. 거기다 연락까지 한 건 나로서는 미친 짓이었다.

  학생 기자실 낡은 철문을 처음 열 때부터 지금까지 그 미친 짓을 잘한 짓이라고 생각하기도, ‘내가 왜 그랬지하며 후회하기도 했다. 그래도 단조로웠던 기자의 일상에 새벽 공기같이 신선한 바람을 불어주었다. 가끔은 너무 불어 추울 지경이었지만.

  학보를 만들며 새로운 일과 사람을 접하는 데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글쓰기는 단연 고민 덩어리였다. 욕심을 다 채우기에 우리는 너무 서먹했다. 게다가 자신을 드러내는 이야기를 쓰는 데에 은근한 공포가 있었다. 이러나저러나 뭐라고 할 사람은 없지만, 그저 스스로에 당당하지 못해 그랬다. 그래서 매번 기도에 가까운 다짐을 했다. ‘공감되고 좋은 이야기를 만들게 해주세요.’ 그게 무엇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바라는 만큼 글 실력도, 감각도 뛰어나지 않지만 새삼 뿌듯한 점도 생겼다. 기자는 은근히 주인공병이 있다. 그 탓에 글 안에서도 주목받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멋져 보일까 고민하며 조잡하게 꾸몄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이따금 허세가 슬금슬금 차올라도 모른 척할 만큼 뻔뻔해졌다.

  연말연시 모두가 그렇듯 기자 역시 야심찬 계획 몇 가지를 세웠다. 하지만 그 보다 앞서 무엇을 하든 꾸준히 하기를 소망한다.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린 일이 지만 다른 소원과 함께 간절히 빌었다. 잘난체하는 느끼한 글을 쓰지 않게 해달라고, 지구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삼색 고양이 정순덕의 행복도 잊지 않았다.

  작년 한 해 학보사와 좋은 사람들, 숱한 고민으로 가득 찼다. 올해는 또 무엇으로 채우는 시간이 될지 기대된다. 여전히 하고 싶은 건 많고 해야 할 일도 많다. 그 자체만으로 이미 든든하다.

  사실 글과 기자 사이가 그다지 돈독한 편은 아니다. 아주 오랫동안 애증이었다고 말하는 게 알맞겠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밉다고 하면서도 자꾸 찾는 걸 보면 많이 좋아하나 보다. 학보사에 있으며 글을 완벽히 즐겼다고는 말하지 못한다. 마감의 압박과 빈약한 이야기의 연속이었으니까. 또 잘한 점보다 형편없던 점이 더 많아 보여 창피하기도 하다. 그래서 지금부터 홀가분한 마음으로 즐겨보려 한다. 더 많이 보고 듣고 쓰며 다가올 시간을 맞아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