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 아고라] 현장에서 배운 말의 온도

2026-09-16     언론출판원

  대학교에서 행정학을 공부할 때만 해도 행정은 제도와 절차, 규정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분야라고 생각했다. 공공기관은 정해진 기준에 따라 업무를 처리하고, 공직자는 그 기준을 정확하게 적용하면 된다고 여겼다. 그러나 현장에서 일을 시작한 뒤 내가 가장 많이 배운 것은 의외로 사람을 대하는 태도였다.

  현재 나는 공공기관에서 청렴·감사·민원 관련 업무를 맡고 있다. 업무 특성상 억울함을 호소하거나 감정이 격해진 민원인을 만나는 일도 적지 않다. 처음에는 정확한 규정을 설명하고 신속하게 답을 드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원하는 것은 단순한 정답만이 아니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고, 그런 결과가 나온 이유를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할 때 비로소 신뢰가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공공기관의 업무를 감정만으로 처리할 수는 없다. 원칙은 지켜야 하고, 때로는 상대가 원하는 결과를 드리지 못하기도 한다. 다만 같은 내용이라도 어떤 태도와 말로 전달하느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무게는 달라진다. 그래서 나는 ‘무엇을 말할 것인가’만큼 ‘어떻게 말할 것인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최근에는 청렴·반부패 교육을 위해 여러 현장을 찾고 있다. 어렵고 딱딱한 내용을 어떻게 하면 쉽게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퀴즈와 사례 중심의 교육을 기획했다. 직원들과 직접 소통하면서 교육 역시 지식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일이 아니라 서로 이해하고 공감하는 과정임을 느꼈다. 사람들은 긴 법 조항보다 자신의 경험과 맞닿은 이야기를 더 오래 기억했다.

  행정은 흔히 차갑고 딱딱한 분야로 여겨지지만, 실제 현장에는 사람의 사연과 감정이 함께한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나 역시 조금 더 넓게 생각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대학에서 익힌 행정학 이론이 업무의 중요한 기반이라면, 현장은 그 위에 공감과 소통이 더해져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돌아보면 나는 규정을 설명하는 사람에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그 결과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으로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원칙을 지키되 사람을 놓치지 않는 것, 그것이 현장에서 배운 말의 온도이자 내가 지향하는 행정의 모습이다.

정지은(경남경찰청 청렴시민반부패청문관, 행정학과 졸업 동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