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머무른 채 떠나는 여행
엘리자베스 랭그리터의 「매일이 휴가」를 만나다
특별하지 않아도 특별하게 기억되는 순간이 있다. 낯선 장소, 새로운 풍경은 휴가를 기대하게 만들지만, 특별함은 장소와 풍경에서 오지 않는다. 내 옆의 사람, 그 장소에 담긴 추억, 우리의 기억이 시간이 지나 다시 떠오르게 된다. 엘리자베스 랭그리터의 「매일이 휴가」는 평범한 일상에서도 여행과 휴가의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작품으로 보여준다. / 문화부
창원시 마산회원구에 있는 3·15아트홀에서는 7월 16일부터 10월 11일까지 엘리자베스 랭그리터 작가의 「매일이 휴가」 전시가 열린다. 3·15아트홀 제1~3전시실에서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성인은 10,000원, 대학생은 문화패스를 사용해 7,000원으로 해당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 해당 전시는 도슨트 작품 해설도 진행된다. 단체 관람을 제외하고 오후 2시와 4시, 주말과 공휴일은 오전 11시, 오후 2시와 4시에 해설을 들을 수 있다. 전시장 입구에서 시작하며, 전시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 그녀는 무엇을 바라보고 있을까
엘리자베스 랭그리터 작가는 독특한 입체 조형 작업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호주의 인기 현대 미술 작가이다. 엘리자베스 작가의 작품이 늘 사랑받는 이유는 작품에 드러난 독특한 시선 덕분이다. 작가는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듯한 Bird’s-eye view(조감법)를 활용해 인물과 공간을 한 화면에 담아낸다.
일반적인 그림들이 사람의 눈높이에서 주변을 바라본다면, 작가의 작품은 새가 날아가며 우리를 내려다보는 듯한 시선을 활용한다. 덕분에 관람객은 특정 인물의 행동뿐만 아니라 그들이 머무르는 공간과 주변을 한눈에 담아낸다. 작가는 자신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작품을 제작하며, 여행지에서 마주한 풍경과 그곳에서 느낀 감정을 화면에 실어낸다.
작가는 캔버스 위에 아크릴 물감을 기반으로 실제 자연물을 섞어 해변을 표현한다. 암초는 자갈을 섞고, 모래는 실제 모래를 섞어 표현하는 식이다. 레이어링 기법으로 작품 속 대상을 아크릴 물감으로 한 겹씩 쌓아 올려 표현하기 때문에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건조 시간으로 인해 작가는 현재 한 번에 여러 작품을 작업한다고 설명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에 느낀 즐거움,
시간이 지난 뒤에도 남아 있는
기억이 여행을
특별하게 만든다.
- 창원에서 만나는 휴가
이번 창원 전시에서 만날 수 있는 작품 중 몇 개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해변 시리즈 중 하나인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와 창원을 배경으로 한 ‘벚꽃 낙원’이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라는 작품은 호주의 본다이 해변을 모티브로 제작된 작품이다. 작가의 작품 특징인 조감법이 돋보이며, 해변의 북적북적한 느낌을 표현했다고 한다. 해당 작품을 자세히 보면 넓고 파란 바다뿐만 아니라, 그 안의 인물과 파라솔이 눈에 들어온다. 작품 속 인물들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면 같은 공간에서도 각자 서로 다른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누군가는 자신만의 휴식을, 누군가는 다른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휴식을 즐긴다. 하나의 장소 안에서 서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동시에 펼쳐지는 듯한 장면이 만들어진다.
또 다른 작품인 ‘벚꽃 낙원’에서는 창원의 봄을 만날 수 있다. 창원의 용지호수공원의 봄을 담은 작품으로, 창원 전시를 위해 작품을 제작했다고 한다. 해당 작품의 특별한 점은 작가의 추억이 담긴 여행지를 감상하는 것을 넘어, 우리에게 익숙한 공간을 작가의 시선으로 새롭게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작품 안에선 만개한 벚꽃과 함께,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의 모습을 함께 담아낸다. ‘벚꽃 낙원’은 창원이라는 익숙한 공간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 나라는 사람의 눈으로 본 휴가
이번 전시를 관람하며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작품 속에서 특별한 여행보다 평범한 순간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전시 포스터의 프리뷰에는 “익숙한 일상 속에서도, 우리는 충분히 행복할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작품을 따라가다 보면 이 문장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임을 느끼게 해준다. 해변에서 햇살을 맞고, 길을 걸어가고, 꽃밭에 발을 들여보는 장면들은 모두 일상의 한순간이다. 하지만 작가는 그 순간을 색채와 구도, 따뜻한 상상력을 통해 하나의 여행으로 만들어 준다.
작품을 보는 동안 자연스럽게 자신의 여행을 떠올리게 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여행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유명 관광지나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다. 함께했던 사람과 나눈 대화,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에 느낀 즐거움, 시간이 지난 뒤에도 남아 있는 기억이 여행을 특별하게 만든다. 작가의 작품은 그런 기억을 닮았다. 실제 풍경을 그대로 옮겨놓기보다 작가의 경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현실에 따뜻한 환상을 더한다. 작품 속 풍경은 현실에 존재하는 장소이면서도 어딘가 꿈처럼 느껴진다. 우리가 여행을 다녀온 뒤 기억 속에서 그 시간을 조금 더 아름답게 떠올리는 것과 닮았다.
멀리 떠나지 않아도 괜찮다. 익숙한 풍경에 다른 시선을 얹어보자. 오늘의 작은 즐거움을 발견하고, 그 평범한 하루에 휴식으로 선물하자.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휴가일지도 모른다. 엘리자베스 랭그리터 작가의 「매일이 휴가」는 그렇게 일상에 머무른 채로 떠나는 여행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