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1년 전에 나와, 지금의 나
성인이 된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누군가는 설레기도 하고 누군가는 앞으로 질 책임감으로 인해 불안하기도 할 것이다. 불안한 마음으로 시작했던 스무 살을 보낸 나 또한 처음에는 성인이라는 책임의 무게가 낯설고 막막했지만, 생각보다 행복한 1년을 보낸 듯하다.
대학 생활을 시작하며 새로운 친구들을 만났고,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순간들을 보냈다. 여름방학이면 다 함께 부산으로 여행을 가기도 했고 힘든 일이 있는 날이면 다 같이 노래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방학 동안은 고등학교 친구들과 새벽까지 게임도 하며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매일 같이 술을 마시고 웃고 떠들며 하루를 보냈었다. 1년 전의 나는 내일을 걱정하기보다는 눈 앞에 있는 사람들과 하루를 즐기는데 바빴다.
하지만 스물한 살이 된 지금은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매번 술을 마시고 놀러 다니던 친구들의 SNS는 더 이상 소식이 올라오지 않았다. 다들 하나둘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며 각자의 현실을 살기 바빴고 본가에 내려오는 횟수도 자연스레 줄었다. 친구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나 역시 아무것도 안 할 수 없겠다는 생각에 억지로라도 일상을 바쁘게 채우기 시작했다.
스무 살의 시절을 생각 없이 보냈다면 지금은 이전과 달리 삶과 미래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날이 많아졌다. 그러다 문득 앞으로의 시간과 삶의 끝을 생각해 봤다. 언젠간 끝을 맞이할 삶을 위해 우리는 왜 이토록 열심히 살아가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갑작스럽게 삶이 끝나는 버리면 어떡할까? 라는 불안도 밀려왔다.
하지만 이런 질문들에는 쉽게 해답을 내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영원히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임에도 끝없이 무언가를 갈망하며 살아간다. 언젠간 이 모든 일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가 영원히 살아갈 수 있다면 무언가를 이루고자 하는 마음 역시 없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삶이 의미 없다는 이유가 아닌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다가올 위험을 예상하고 대비하려는 성향이 있다. 이는 생존에 유리하도록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특성이기도 하다. 이런 두려움은 때로는 우리를 더 나은 결과로 만들어내기도, 누군가에게는 끊임없는 걱정과 불안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 때는 ‘우리는 어떤 목적으로 태어났나?’가 아닌 ‘유한한 삶에서 내가 어떻게 의미 있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스스로 질문해 보는 것이 어떨까?
누구나 살아가면서 한 번쯤은 자기 삶과 끝을 돌아보는 날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삶을 소중히 여기고 아직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 있기에 끝을 생각하게 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