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회 3·15청년문학상 현상 공모 - 동화 부문 당선작 '동그라미가 도는 동안'

2026-07-28     언론출판원

동화 부문 당선: 최제헌(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1)

 

동그라미가 도는 동안

 

 

  이루의 얼굴 한가운데에 동그라미가 돌고 있었다. 처음 라미는 그것을 도넛이라고 생각했다. 아주 작은 도넛. 다시 보니 반지 같기도 했다. 손가락에 끼우기에는 크고, 얼굴에 걸어 두기에는 이상한 반지였다. 하얀 점들이 이루의 입가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라미는 그것을 한참 바라보다가 유튜브 영상이 멈췄을 때 뜨는 그림을 떠올렸다. 버퍼링이었다.

  “너 저거 보여?”

  라미가 앞자리 민호의 등을 찔렀다. 민호는 이루를 한 번 보고 라미를 한 번 보았다.

  “뭐가? 그냥 대답 안 하는 중이잖아.”

  민호는 다시 앞을 보았다. 라미는 눈을 비볐다. 그런데도 동그라미는 여전히 돌고 있었다.

  라미는 이루의 얼굴을 더 자세히 보았다. 이루의 볼에는 작은 점들이 있었다. 혹시 말하기 전에는 그 점들이 입가로 모이는 걸까? 하지만 볼의 점들은 가만히 있었다. 

  라미는 사람의 입을 자주 보았다. 말이 나오기 직전 조금 벌어지는 입을 보면, 그 안에 들어 있는 대답을 먼저 꺼내 주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대답 없는 이루에게 다시 물었다.

  “이루야, 라미랑 어떤 소리를 찾아보고 싶니?”

  이번 주 과제는‘학교에서 들을 수 있는 가장 작은 소리’를 찾아 발표하는 것이었다. 두 명씩 짝이 되어 소리를 찾고, 그 소리가 왜 특별한지 설명해야 했다. 

  선생님은 발표가 끝나면 반장 선거도 한다고 했다. 라미는 반장이 하고 싶었다. 앞에 나가 또박또박 말하는 일도, 빨리 정해서 반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일도 좋았다.

  이루의 입술이 조금 열렸다. 동그라미는 더 빨리 돌기 시작했다. 라미는 셋까지 세었다. 하나, 둘, 셋. 그러고 나자 참을 수가 없었다.

  “종소리요!”

  라미가 손을 번쩍 들었다.

  “학교 종소리요. 끝날 때 작게 사라지잖아요. 그거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이루의 입술이 닫혔다. 동그라미도 사라졌다.

  라미는 기다리는 것을 싫어했다. 동영상이 끊기면 화면을 톡톡 두드렸고, 친구가“어……”하고 말끝을 붙잡고 있으면 라미의 입이 먼저 열렸다. 조용한 틈이 생기면 얼른 말로 채워 넣어야 마음이 편했다.

  그런 라미와 정반대인 아이가 이루였다. 이루는 대답하기까지 오래 걸렸다. 누가 이름을 부르면 응, 이 반 박자 늦게 나왔고, 아이들이 웃긴 이야기를 하면 웃음도 뒤늦게 도착했다. 라미는 이루가 답답했다.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말하면 될 텐데 왜 그렇게 오래 걸리는지 알 수 없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민호가 이루에게 물었다.

  “야, 축구할래?”

  이루의 얼굴에 작은 동그라미가 떴다. 이루가 입을 열기도 전에 민호는 이미 공을 들고 교실 밖으로 뛰어나가고 있었다.

  “안 하면 말고!”

  동그라미가 꺼졌다. 라미는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이루의 얼굴에 뜨는 동그라미는 아무 때나 나타나는 게 아니었다. 이루가 무언가 말하려고 할 때만 나타났다. 누가 기다리지 않으면 금방 사라졌다.

  라미와 이루는 학교 안을 돌아다니며 작은 소리를 찾기 시작했다. 라미가 앞장서서 말했다.

  “책 넘기는 소리도 괜찮고, 연필 굴러가는 소리도 괜찮겠다. 너는 뭐가 좋아?”

  이루의 얼굴에 동그라미가 떴다. 라미는 기다려 보려고 했다. 하지만 셋을 세기도 전에 입이 먼저 움직였다.

  “대답 안 하면 내가 하고 싶은 거 한다?”

  이루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동그라미가 사라졌다.

  다음 날, 종소리는 민호와 수빈이 모둠이 가져갔다. 라미는 속이 뜨거워졌다.

  “선생님, 저희도 종소리 생각했는데요.”

  민호가 바로 대답했다.

  “정한 건 우리잖아.”

  틀린 말은 아니었다. 라미와 이루는 아직 아무것도 정하지 못했다. 라미가 혼자 이것저것 말했을 뿐, 둘이 같이 고른 소리는 없었다.

  그날 오후에 라미는 이루를 데리고 학교를 돌아다녔다. 운동장에서는 모래 밟는 소리가 났고, 도서관에서는 책장 넘기는 소리가 났다. 급식실에서는 숟가락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소리는 많았지만, 마음에 드는 것은 없었다. 발표에서 아이들이 우와, 하고 입이 벌어질 만큼 특별해야 했다.

  3층과 2층 사이 계단참을 지날 때였다. 이루가 갑자기 멈췄다. 그곳은 아이들이 잘 머물지 않는 곳이었다. 창문은 작고, 벽에는 오래된 학교 안내도가 붙어 있었다. 이루는 벽 앞으로 다가가더니 귀를 갖다 댔다.
라미가 물었다.

  “뭐 해?”

  이루의 얼굴에 동그라미가 떴다.

  “설마 벽 소리 하자는 거야?”

  라미는 페인트가 조금 벗겨진 벽을 쳐다보았다.

  “벽이 무슨 소리를 내. 발표할 때 애들이 웃으면 어떡해.”

  이루는 벽에서 천천히 귀를 떼었다. 동그라미는 점차 커졌다.

  발표 전날이 되자 라미는 점점 초조해졌다. 다른 모둠들은 모두 준비가 끝나 있었다. 민호와 수빈이는 종소리가 울린 후에 남는 스피커의 진동을 녹음했다. 예린이네 모둠은 운동장 구석에서 개미들이 흙을 밀어내는 소리를 찾았다고 했다. 핸드폰에는 아무 소리도 들어가지 않았지만, 예린이는 당당하게 말했다.

  “마음으로 들으면 들려.”

  아이들이 웃었다. 라미는 웃을 수 없었다. 청소 시간에 라미는 결국 이루에게 말했다.

  “너도 좀 말해.”

  이루가 쓰레받기를 들고 라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 혼자만 하는 것 같잖아. 싫으면 싫다고 하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있다고 하면 되잖아. 말을 안 하면 아무것도 모른다고.”

  교실이 조용해졌다. 이루의 얼굴에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큰 동그라미가 떴다. 두 뺨과 입을 다 덮을 만큼 컸다. 하얀 점들은 빠르게 돌았다. 한참 뒤 이루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알아.”

  라미는 더 말하지 못했다. 이루도 알고 있었다. 자기가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는 것. 누군가 기다리지 않으면 자기 말이 나오기 전에 사라진다는 것. 그걸 이루도 이미 알고 있었다.

  하교 시간에는 비가 내렸다. 아이들은 우산을 펴고 교문으로 뛰어갔다. 라미도 집에 가려다가 신발장 앞에서 이루를 보았다. 이루는 우산을 들고 있었지만,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대신 복도 안쪽으로 걸어갔다. 라미는 잠깐 망설이다가 따라갔다.

  이루는 다시 그 계단참 벽 앞에 섰다. 비 오는 날이라 그런지 계단참은 더 어두웠다. 창문에는 빗줄기가 흐르고 있었고, 벽에서는 젖은 먼지 냄새가 났다. 이루는 벽에 귀를 붙였다.

  라미는 이루가 듣고 있는 것이 궁금했다. 물 흐르는 소리? 빗물이 내려가는 소리? 수도관 소리? 말들이 혀끝까지 올라왔지만, 라미는 삼켰다. 대신 창문에 매달린 빗방울을 보았다. 큰 빗방울 하나가 작은 빗방울 둘을 데리고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한참 뒤 이루가 말했다.

  “학교가…… 물을 삼키는 소리.”

  라미는 벽을 보았다.

  “학교가 물을 삼킨다고?”

  이루는 고개를 끄덕였다. 라미도 조심스럽게 벽에 귀를 댔다. 처음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차가운 벽 냄새만 났다. 라미는 몸을 떼고 싶었지만, 조금 더 버텼다. 그러자 벽 안쪽 깊은 곳에서 아주 작은 소리가 났다. 꼬르륵. 잠깐 조용해졌다가 다시, 꼴깍. 정말로 학교가 물 한 모금을 넘기는 것 같은 소리였다.

  이루는 라미 손에 들린 핸드폰을 가리켰다. 라미는 얼른 녹음 버튼을 눌렀다. 이번에는 이루의 얼굴에 동그라미가 없었다. 학교는 겉으로는 아무 말 없이 서 있었지만, 속으로는 계속 무언가를 삼키고 있었다.

  라미는 그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아무 소리도 안 나는 것과 아직 못 들은 것은 달랐다.

  발표 날이 되고 라미와 이루는 칠판 앞에 섰다. 핸드폰에는 계단참에서 녹음한 소리가 들어 있었다. 

  선생님이 말했다.

  “이루도 한마디해 볼래? 둘이 같이 찾은 소리니까.”

  이루의 얼굴에 동그라미가 떴다. 이루가 우물쭈물하는 동안 누군가 의자를 삐걱거렸고, 뒤쪽에서는 작은 웃음소리가 났다. 라미의 입이 저절로 열렸다. 대신 말해 줄까. 라미가 말하면 빠르고 또렷했다. 발표도 매끄럽게 지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라미는 전날 벽에 귀를 대고 기다리던 순간을 떠올렸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기다리고 나서야 들렸다.

  라미는 열린 입을 닫았다. 그리고 아이들을 향해 손바닥을 살짝 들었다.

  “잠깐만.”

  아이들이 라미를 보았다. 라미는 이루 대신 말하지 않았다. 그저 기다렸다. 하얀 점들이 이루의 입가에서 돌고 있었다. 한참 뒤 이루가 말했다.

  “천천히…… 들어 주세요.”

  목소리는 작았다. 하지만 모두 들었다.

  라미는 녹음을 재생했다. 처음에는 빗소리만 들렸다. 지지직거리는 소리도 섞여 있었다. 민호가 중얼거렸다.

  “아무 소리도 안 나는데?”

  라미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조금 더 기다렸다. 그러자 핸드폰 스피커에서 소리가 났다. 꼬르륵. 아이들의 눈이 커졌다. 잠깐 뒤 다시 소리가 났다. 꼴깍. 

  라미는 발표문을 읽었다.

  “저희가 찾은 소리는 학교가 물을 삼키는 소리입니다. 비 오는 날 2층과 3층 사이 계단 벽에 귀를 대면 들을 수 있습니다. 이 소리는 아주 작아서 바로 들리지 않습니다.”

  라미는 마지막 문장을 읽으려다가 멈췄다. 발표문에는‘작은 소리는 기다리는 사람에게만 들립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어제 쓸 때는 멋진 말 같았는데, 지금 읽으려니 너무 교장 선생님 말투 같았다. 그래서 라미는 그 문장을 읽지 않는 대신 다른 말을 했다.

  “저는 처음에 이 소리를 못 들었어요. 자꾸 다른 소리가 섞여서요. 이 소리는 이루가 찾았습니다.”

  교실이 조용해졌다. 이번의 조용함은 말을 재촉하는 조용함이 아니었다. 무언가를 더 들으려고 생긴 조용함이었다. 선생님이 먼저 손뼉을 쳤고, 아이들도 따라 쳤다. 이루는 고개를 숙였지만, 귀가 조금 빨개져 있었다.

  그날 이후에도 이루의 말은 천천히 나왔다. 민호가 “축구할래?”하고 물으면 이루의 볼에 작은 동그라미가 떴고, 수빈이가 “색연필 빌려도 돼?”하고 물으면 입가에 하얀 점들이 돌았다. 하지만 달라진 게 있었다. 

  “잠깐만.”

  라미가 말하면 아이들도 조금은 기다렸다. 이루의 말은 길지 않았다. 짧은 말들이었지만, 전보다 선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

  며칠 뒤 선생님이 반장 선거 후보 신청서를 나눠 주었다.

  “나가고 싶은 사람은 공약을 적어 오세요.”

  전 같으면 라미는 바로 이름을 썼을 것이다. 그런데 그날은 생각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하고 싶다. 그런데 너무 빨리 말하면 어떡하지. 다른 아이들 말을 또 끊으면 어떡하지. 

  라미는 창문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았다. 아주 잠깐, 자기 입가에도 작은 동그라미가 뜬 것 같았다. 라미는 놀라지 않았다. 동그라미가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후보 신청서에 자기 이름을 적었다.

  공약 칸 앞에서 라미는 한참 연필을 멈췄다. ‘기다려 주는 반’이라고 쓰려다가 지웠다. ‘천천히 말해도 되는 반’이라고 썼다가 그것도 지웠다. 라미는 새 줄에 아주 작게 썼다.

  잠깐만.

  옆자리에서 이루가 그 글씨를 보았다. 이루의 얼굴에 동그라미가 떴다. 라미는 기다렸다. 이번에는 숫자 하나 세지 않았다.

  교실 뒤쪽에서 누군가 의자를 미는 소리가 났다. 아직 다 마르지 않은 우산 끝에서 빗물이 똑,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라미는 그 소리들을 지나치지 않고 가만히 들었다.

  한참 뒤 이루가 말했다.

  “그 말…… 좋다.”

  라미는 연필을 내려놓고 마침표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마지막에 찍힌 점은 천천히 돌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제7회 3·15청년문학상 동화 부문 심사평

  동화는 어린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문학인 만큼,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가 못지않게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 독자의 감각에 닿는 언어, 그리고 상상력을 설득력 있는 서사로 완성해내는 힘이야말로 동화의 핵심적인 조건이라 할 수 있다. 수상작 「동그라미가 도는 동안」은 이러한 조건을 가장 충실하게 구현해 낸 작품이었다. 성격이 급하고 적설적인 외향형 인물 ‘라미’와 생각이 깊고 말이 느린 내향형 인물 ‘이루’라는 두 주인공을 내세운 이 작품은, 서로 다른 성향을 지닌 아이들이 갈등과 화해를 거치며 성장해 가는 과정을 안정된 플롯 속에 담아냈다. 무엇보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을 수 없는 ‘작은 소리’를 찾아 나서는 여정을 통해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라는 주제를 자연스럽게 형상화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은 주제를 설명하지 않고 이야기 속에서 살아 움직이게 만든다는 데 있다. 말이 느린 ‘이루’가 대답할 때 나타나는 ‘말의 버퍼링’을 얼굴에 떠오르는 동그라미로 표현한 장면은 어린이 독자의 눈높이에 맞춘 탁월한 상상력의 사례라 할 만하다. 또한 계단참 벽 앞에서 들려오는 배수관의 물소리를 "학교가 물을 삼키는 소리”로 형상화한 대목에서는 일상의 사물을 새로운 감각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수상자가 앞으로 좋은 동화작가로 성장하길 옹원한다. 아울러 소중한 작품을 보내주신 응모자들에게는 이번 공모가 새로운 창작의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휘민(시인, 동화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