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근의 발밤발밤] 창동에 인환의 ‘마리서사’가 문을 연다면

2023-09-06     언론출판원

  ‘목마와 숙녀’의 시인 박인환(1926~1956)과 ‘시여 침을 뱉으라’의 시인 김수영(1921~1968)은 애증 관계가 있었다. 시 친구였고 술친구였던 두 시인은 서울 명동에서 자주 어울려 술을 마셨다. 두 사람은 1949년에 김경린, 임호권, 양병식 등과 발간한 동인지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에 함께 참여했다. 동인지를 같이 할 정도면 문학의 뜻이 통하는 사이다.

  하지만 박인환은 그 동인지에 김수영이 발표한 ‘공자의 생활난’이란 시와 1945년 예술부락에 발표한 ‘묘정의 노래’란 시를 끔찍하게 싫어했다. 두 사람은 해방 이후 같은 모더니즘을 추구했지만, 시의 결은 달랐다. 김수영은 영어를 잘해서 외국 서적을 통해서 모더니즘에 대해 눈을 떴고, 강원도 인제 출신으로 평양의대서 공부하다 서울로 와 ‘모던 보이’ 흉내를 내던 박인환이 싫었다.

  하지만 박인환은 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자신도 어려운 여건 속에서 김수영에게 술을 자주 샀고, 김수영 몰래 그의 부인 김현경에게 생활비를 보태주었다. 그래도 김수영은 틈만 나면 박인환의 ‘싸구려 감성’에 대해 모욕을 줬다. ‘그게 시냐?’며 타박해도 박인환은 김수영을 꼭꼭 챙겼다. 훗날 문학 사가(史家)들은 그런 점에서 박인환을 김수영보다 한 수 위의 시인으로 평가했다.

  그건 시를 떠난 인간의 문제일 것이다. 김수영은 자신보다 다섯 살 아래의 박인환의 재능이 부러웠을 것이고,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온 박인환은 김수영을 형처럼 의지했을 것이다. 둘 다 콤플렉스 문제가 있었지만, 김수영은 감추지 못했고 박인환은 잘 감추었던 것이 아닐까. 아까운 것은 두 사람이 오래 살지 못하고 서른 살, 마흔다섯 살에 각각 세상을 떠나버려 정겨운 후일담이 문학판에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난 여름 날씨가 하 지독해 책 읽기가 불편했다. 다행히 9월 들어 밤에 불 밝히고 책을 읽을만해서 고마울 따름이다. 나이 드니까 눈이 침침해서 많이 읽지는 못하지만 글 읽는 즐거움이 여전히 책에 있는 것이 행복하다. 박인환은 서울에 와 열아홉 살에 ‘마리서사’란 서점을 열었다. ‘마리’란 茉莉(말리)에서 가져왔다. 말리는 하얀 꽃이 피는, 차가 향기로운 재스민을 가르킨다. 박인환은 마리를 어느 일본 시인의 시집 제목에서 따왔다고 한다.

  재스민 차향이 그윽하게 나는 20평의 마리서사에서 해방 후 새로운 시에 대한 뜨거운 대화를 나누던 두 시인의 열정이 부러울 따름이다.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당대의 김기림, 김광균, 오장환, 이시우, 이한직, 이흡 등이 모여 좌우가 없이 문학을 향유했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 왜 마산에는, 창동에는 그런 서점이 없는가? 안타까울 따름이다.

  창동에 박인환이 주인인 마리서사가 문을 연다면 좋겠다. 나이 들수록 고집만 세어지고 나잇값 못하는 친구들과 재스민차 한 잔 나누며 훌훌 털어버리고 처음 시를 쓰던 ‘월영동 449번지’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을 때가 많다. 온몸으로 시를 쓰던 그 시절이 우리에겐 ‘화양연화’(花樣年華)이었다는 것을 들려주고 싶은 것이다.

석좌교수, 청년작가아카데미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