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새로운 청년 절약 트렌드, ‘거지방'

2023-05-10     전은주 기자

  치솟는 물가에 조금이나마 소비를 줄이기 위해 청년들이 ‘거지방’으로 모이고 있다. ‘거지방’이란 서로의 소비 내역을 공유하며 절약을 독려하는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이다. 이는 극단적으로 소비를 줄이자는 취지의 채팅방으로, 이용자들은 단지 지출 내역을 공유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서로의 충동 구매를 막아주거나 현명한 소비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이렇게 같이 모여 절약하는 모습이 멋지다.”, “젊었을 때 아껴야 잘 산다.” 각종 SNS의 ‘거지방’에 대한 반응을 살펴보면 대체로 긍정적이다. 현재 ‘거지방’이라는 제목을 가진 오픈 채팅방은 500개를 훌쩍 뛰어넘었다. 정원이 1,500명으로 설정된 방도 인원이 가득차 입장하기 어렵다. ‘거지방’의 운영 방식은 채팅방마다 조금씩 다르다. 그러나 주로 한 달 치 지출 목표를 세우거나 하루 지출 금액에 한도를 두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또, 닉네임 옆에는 한 달 누적 소비를 기록하기도 한다.

  ‘거지방’에 속한 참여자들은 누군가가 조금이라도 과한 지출을 하면 사치라며 채찍질을 가한다. 채팅을 통해 대화하는 사람들은 이모티콘을 직접 그려서 사용하며, 물 한 병을 구매했다고 알리면 약수터를 이용하지 않았다 질책받는다. 점심 메뉴를 추천해달라고 말하자, 음식 사진을 띄워놓고 맨밥을 먹으라고 하기도 한다. 이처럼 ‘거지방’에서 일어난 재밌는 일화들이 SNS를 통해 퍼져나가며 채팅방에 많은 사람이 모이게 되었다.

  ‘거지방’은 경제 불황과 고물가 시대로 인한 청년들의 어려움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문화이다. 고물가, 고금리 기조가 계속되고 청년 실업률이 평균 실업률의 두 배를 웃돌고 있다. 결국 취업의 최전선에 서 있는 청년들은 점심값, 교통비 등 필수 생활비조차 줄여야 하는 상황을 마주했다. 지난 2017년에는 자기 행복을 가장 중요시하고 소비를 과시하던 ‘욜로(YOLO)’ 문화가 청년들의 경제 트렌드였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생활비 절약을 실천하는 ‘짠테크(짠돌이+재테크)’나 ‘무지출 챌린지’가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이러한 절약 트렌드에 놀이 문화가 결합되어 올해는 ‘거지방’이 새롭게 유행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청년들의 이런 ‘절약 트렌드’가 앞으로도 지속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해 11월 전국경제인연합회 조사에서 15~29세 청년층의 경제고통지수가 25.1로(평균 16.3) 모든 세대 중 가장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거지방’과 같이 스스로 절약하는 습관을 기르고 실천하는 건 그 행동 자체로 가치 있다. 그러나 이는 청년들이 커피값이나 택시비 등 작은 지출도 아끼지 않으면 버티기 어려운 현실을 직설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자신을 ‘거지’라 지칭하여 스스로 채팅방에 들어가는 청년들, 이들을 위한 정책적인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