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정신의 교육 마당, 진해 주기철 목사 기념관
항일 독립운동가 주기철 목사를 기리는 곳
3월 1일은 대한민국의 주권을 수호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독립운동가들을 추모하는 삼일절이다. 우리 지역에는 독립운동과 관련된 명소로 주기철 목사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주기철 목사 기념관'이 있다. 이 기념관은 일제와 맞섰던 주기철 목사의 일생과 추구했던 가치관, 독립 철학 등을 소개하며, 교육 활동을 위한 장소로써 활용 중이다. 이번 삼일절을 맞아 주기철 목사가 후대에 남긴 의지를 되새기며, 그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주기철 목사 기념관을 한번 알아보자. /문화부
우리나라 종교계에 큰 영향력을 끼친 인물인 주기철 목사는 일제 강점기 당시 민족의 계몽에 힘썼다. 특히 자신이 추구한 신앙심과 가치관을 교육 현장 내외에서 적용하며 많은 청년과 종교인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주기철 목사 기념관은 2015년 3월 24일 목사의 고향인 웅천에서 개관하여 주 목사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고, 이를 계승하며 발전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더불어 나라와 민족을 위해 희생한 그 사상과 정신을 일깨워 산교육의 마당으로 자리 잡았다.
+ 소양 주기철 목사의 생애
주기철 목사는 1897년, 경상남도 웅천군(현 창원시 진해구)에서 4형제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민족 계몽에 뜻을 품고 상경해 오산학교를 졸업했으나 조선기독교대학 재학 중 지병으로 인해 학업을 중단하고 낙향했다. 고향에 돌아온 이후에는 웅천 교회에서 집사로 봉직하며 신앙 활동을 이어갔다. 이후 더 많은 이들에게 신앙으로 위로를 건네고자 1922년 조선예수교 장로회신학교에 입학하며 전도사의 길을 걷게 되었다.
1930년대 후반에 접어들어, 당시 조선총독부는 민족말살정책의 일환으로 교회와 기독교인들에게까지 신사참배를 강요했다. 이러한 압박이 이어지자 일부 개신교 목사들은 현실과 타협하고 신사 참배에 동의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주기철 목사는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구속당하는 길을 선택했다. 일제는 완고한 의지를 보이는 그를 설득하기 위해 여러번 구속했다가 겨우 풀어주는 방법을 썼다. 하지만 매번 회유에 응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자 일제는 주 목사 에게 고문을 가했다.
구속된 지 7개월 만에 석방된 주기철 목사가 곧바로 향한 곳은 교회 강단이었다. 주기철 목사는 신자들에게 신사참배 반대의 강한 의지를 전했고, 이틀 뒤 주 목사는 다시 일제에 의해 구속당했다. 그는 구속 후 더욱 심해진 온갖 모진 고문과 회유에도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렇게 감옥에서 5년간 구속되어 있다가 1944년 4월 21일, 아내와의 마지막 면회 후 5시간 뒤인 밤 9시에 병으로 숨을 거뒀다. 이후 그의 유해는 평양 근처 돌박산 기독교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순교 이후로도 주기철 목사를 기리는 뜻은 이어졌다.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와 온갖 고문 속에서도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고 신앙과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의지는 후대에 결국 인정받았다. 그렇게 1963년, 그는 우리나라 정부로부터 공로를 인정받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더불어 1968년 9월 18일, 성경을 비롯한 그의 유류품이 국립서울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었다.
+ 향토 항일운동가 기념관, 주기철 목사 기념관
주기철 목사 기념관은 경남 창원시 진해구 웅천동로 174에 위치 한다. 우리 대학에서 주기철 목사 기념관까지 가는 방법은 용원종점 방면으로 가는 860번 버스를 타고 웅천성내 정류장에서 내리면 된다. 하차 후 웅천성 외곽의 해자를 따라 걷다 보면, 조용한 장소에 자리 잡은 주기철 목사 기념관에 도착한다. 운영 시간은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일요일과 1월 1일, 12월 25일은 휴관일로 개장하지 않는다. 또, 동절기(12월~2월)에는 오후 5시까지 운영 시간이 축소된다는 점 참고하자. 더불어 별도의 입장료 없이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기념관 입구 마당에 들어서면 커다란 십자바위가 가장 먼저 시선을 끈다. 이 바위는 실제로 주기철 목사가 기도했던 무학산 십자바위를 본떠 만든 모형으로 상징성이 매우 크다. 십자바위를 지나 기념관 내부로 입장하면 제1전시관인 면류관을 관람할 수 있다. 면류관에는 주기철 목사의 일생과 항일 운동 기념물이 자리했다. 전시실 내부가 크게 조성된 것은 아니지만, 항일 운동을 재현한 미니어처 조형물 등이 있어 당시의 시대상을 이해하기 좋다. 또, 전시장 중앙에는, 주기철 목사의 흉상이 자리 잡아 공간의 숭고함을 형성하고 있다.
2층은 1층에 비해 더욱 다양한 전시실이 존재한다. 먼저 주기철 목사의 청빈했던 생가의 일부를 그대로 재현한 ‘소양홀’이 자리했다. 이후 계단 앞에 위치한 ‘기획전시실’로 눈을 돌리면, 주 목사를 기리는 다양한 기념물을 볼 수 있다. 주기철 목사의 신념을 이어받은 신자들이 느낀 바를 과감하게 표현한 미술품과 역사적 가치를 지닌 여러 물품을 관람가능하다.
제2전시관인 나라사랑관은 기념관에서 가장 볼거리가 많은 전시실이다. 주 목사의 발자취를 담은 영상과 강독을 재현한 밀랍 인형, 그리고 복원한 십자바위를 감싼 기도실이 눈길을 끈다. 십자바위 뒤에서 빛나는 십자가는 기도실의 성스러운 분위기를 한층 끌어올렸다. 제2전시실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주기철 목사의 종교적 신념이 묻어있다. 그러나 청년들을 계몽하는데 힘쓴 민족지도자의 자취도 섞여 있어 항일에 대한 의지를 이해하기 무리 없는 공간이다.
+ 주기철 목사 기념관 속 다양한 체험활동
만약 기념관에 관심이 생겼으나 방문할 시간이 부족하다면 공식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VR 서비스를 추천한다. 공식 사이트에는 간단한 방문 안내와 함께 기념관의 로드뷰가 제공된다. 해당 로드뷰를 통해 클릭 몇 번으로 실제 전시관처럼 생생하게 구경할 수 있다.
또, 주기철 목사 기념관에서는 간단한 체험활동도 진행된다. 유치원생 이상 개인 또는 단체는 전화로 사전 신청을 하면 슈링클스 열쇠고리 만들기, 탁본 액자 만들기, 목판 퍼즐 색칠하기 등 여러 체험 활동을 즐길 수 있다. 체험 후 시간이 넉넉하다면 주기철 목사 성지 순례길 코스도 이용해보자. 주기철 목사 성지 순례길 코스는 총 다섯 개의 코스로 이뤄진다. 주기철 목사 기념관을 시작으로 웅천 초등학교와 웅천 교회를 거치는 ‘묵상하길’, 경남 선교 120주년 기념관으로 향하는 ‘헌신하길’, 무학산 십자바위로 향하는 ‘기억하길’ 등 다양한 코스가 존재한다. 여러 성지 순례길을 걸으며 주기철 목사의 가치관과 독립 철학을 되새겨보자.
삼일절은 단순한 휴일이 아닌 대한민국 자유와 평등과 정의의 생일과 같다. 3·1절을 기념하는 행사는 당일 전국 곳곳에서 열릴 전망이지만, 우리 대학 인근에는 상시 운영되는 독립기념관이 아직 없다. 만약 지금이라도 삼일절을 기념하고 싶다면, 진해의 푸른 바다를 구경하다 옛 성을 둘러보면 도착하는 주기철 목사 기념관으로 가는 것을 추천한다.
정지인·김민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