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책] 현실을 바탕으로 한 이상(理想)

2022-12-07     언론출판원

  “무엇보다도 그는 타인의 재산에 손을 대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어버이의 죽음은 쉽게 잊어도 재산의 상실은 좀처럼 잊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학부생 시절 점심 후 식곤증으로 졸면서 들었던 근대 정치사상사 수업 중에 내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든 말이다. 효(孝)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생각해 온 한국사회에서는 입에 담기 힘들지만 인간의 탐욕에 실망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무릎을 탁 치게 할 만한 이러한 글을 남긴 사람은 바로 16세기 초 이탈리아의 정치가였던 니콜로 마키아벨리였다. 마키아벨리는 본래 피렌체 공화국의 외교관으로 일했으나 당대 유럽 최대 거부였던 메디치 가문의 왕정이 들어서면서 공직에서 추방되고 반정부 혐의로 고문까지 받았다. 그랬던 그가 국왕인 로렌조 데 메디치에게 자신을 등용해 줄 것을 청하며 올린 책이 바로 그 유명한 『군주론』이다. 이 책을 통해 마키아벨리는 기회주의자이자 권모술수의 화신이라는 악명을 얻게 되었다. 그는 군주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기는 어렵고 사랑을 주던 이들이야말로 더 쉽게 배신을 하기 때문에 차라리 공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또한 위대한 군주들은 신의가 없고 오히려 속임수를 쓰는데 능숙한 인물들이며, 필요하다면 악행도 서슴지 않아야 한다고 권한다. 하지만 『군주론』은 수많은 정치가들과 경영자들이 (몰래) 탐독하는 리더십의 고전이 되었다.

  그렇다면 마키아벨리는 정말 기회주의자였고, 『군주론』은 사람들을 타락시키는 악마의 책인가? 군주제를 비판하는 공화주의자였던 그가 군주에게 조언을 하고자 했던 것은 여러 나라로 갈라져 전쟁에 시달리던 이탈리아의 통일과 평화가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인간의 사악함에 주목했던 것도 선한 의도가 반드시 선한 결과를 낳지 않듯이 높은 이상을 추구한다고 반드시 좋은 정치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악과 이기심을 포함한 인간의 본성에 대한 현실적인 이해 없이는 공화주의라는 자신의 이상을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이 마키아벨리의 정치관이었던 것이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군주론』을 읽고 더 사악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속의 수많은 정치인들은 마키아벨리 이전에도 이후에도 『군주론』을 넘어서는 권모술수와 악행을 일삼고 있다. 따라서 마키아벨리가 “왕들에게 교훈을 주는 척하면서 큰 교훈들을 서민들에게 주었다”는 프랑스의 철학자 장 자크 루소의 평가를 유념할 필요가 있다. 마키아벨리가 정치인들의 권모술수와 악행에 대해 폭로해 보통 사람들이 그들에게 속지 않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군주론』은 정치인들이나 리더들보다는 민주주의 국가의 보통 시민들이 더 많이 읽어야 할 고전이라 할 수 있다.

지주형(사회학과 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