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회 10·18 문학상 현상공모 - 시 부문 당선작 '공개 구인'
시 부문 당선: 최예지 (미디어영상학과·4)
공개 구인
등을 어루만져주던 모르는 언니가 속삭였다
이 끈질기게 초록인 행성에선 다들 누군가를 그리워해
누군가가 누구인지 기억나지 않을 때 괴로워
줄을 그어 표정 안에 속과 밖을 넣는다
까발려지지 않은 속과 지나친 날 것은 아닌 밖을
빗금을 치고 표정이 없는 척하는 것
지구에선 그런 걸 ‘나’라고 불렀다
지나간 향기는 얼룩만 남아
깊이 들이쉰 숨에 콧방울만 간지러워진다
설명할 줄 알았던 누군가가 있었지
잔상과 냄새는 기억나지 않는다
네가 나인 적이 있었는데 너의 향에 나를 전부 내어줘서
내가 ‘나’이지 않아 행복한 적이 있었는데
전부 어디로 갔지?
언니, 어디로 갔어?
10·18문학상 시 당선 소감
어릴 때부터 책 읽는 건 무진장 좋아한 소녀였다. 보통의 젊은 엄마들이 그러하듯 우리 엄마 역시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사서 책장에 꽂아두곤 하셨다. 나는 가만 앉아 책상다리를 하고 구부정한 자세로 동화책과 세계 유명인들의 전기를 읽곤 했다. 내가 모르는 세상과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세계를 손쉽게 맛볼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었다.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뭣도 모를 시절에 까마득히 어려 가보지도 못한 세상에 이미 가본 사람들의 이야기,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세상을 맛보는 행위. 그곳에 발 넣으면 눈앞에 선명히 펼쳐지는 모든 공간이 새로웠다. 그래서 고개가 할미꽃마냥 꺾이는 고통을 느끼면서도 멈출 수 없었는지 모른다.
머리가 자라고 소설과 시를 읽게 됐다. 이상하게 도서관에만 가면 나는 종이책 냄새와 고요한 공기, 저마다의 발자국 소리가 나를 안심시켰다. 친구들은 장난스레 날 문학소녀라 칭하곤 했지만 학교 내 독서광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 무기력함으로 삶이 상쇄될 때쯤 많고 많은 글 중 시를 사랑했다. 시는 사람의 감정을 골몰하게 하는 능력과 문장을 곱씹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그 매력에 빠져 필사하고 직접 창작하며 시를 사랑해버렸다. 유일하게 무언가에 뛰어든 처음이었다. 내게 시란 그런 의미다. 나를 전부 써도 모자랄 무언가를 꺼내주는 힘이 있는 것. 그저 사랑한 것이 되돌아올 거란 생각 꿈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사랑한 것이 내게 힘이 되니 그만큼 기쁜 것이 없다. 감사한 마음 안고 더 많은 시를 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