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원 칼럼] 사람다움을 꿈꾸라

2018-05-24     언론출판원

  어느 아침 사람 냄새를 물씬 풍기는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내가 아침 출근길에 한 번씩 들르는 빵집 주인이다. 스마트 폰이 아닌 ‘종이책’을 읽고 있는 그녀가 달리 느껴졌다. 아날로그적인 그녀의 모습은 한 편의 가상적 장면을 보는 듯했다. 이 표현이 과할지 모르나, 당시 내게는 충분히 그러하였다.
  그즈음 나는 스마트 폰에 매몰된 오늘날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문제 제기를 하고 싶었던 때였다. 또한 여기저기서 들리던 4차 산업혁명과 그 여음들을 잔잔하게 흘려듣기만 해서는 안 될 것 같아 나름 정보 공유와 자료 읽기에 여념이 없던 때였다. 기계 문명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인간과 AI 로봇과의 연대된 공동체까지 등장하게 되리라는 주장을 통해 상당히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산업의 변화에 나는 긴장하였다. 거기에는 인간의 한계가 주는 두려움도 한몫을 하였다.
  지금 우리는 여러 편의 영화 덕분에 AI 로봇과 함께하는 다양한 인간의 삶의 모습을 앞서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영화 ‘Her’에 나오는 사이버 여자 친구는 기본 감정뿐만 아니라 인간의 수치심을 표현하는 언어까지도 사용할 수 있다. 그녀는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언어 데이터를 바탕으로 자아도 발달한다. 물론 인간의 다양한 경험을 잘게 쪼개어 코딩한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정치적 권리까지 요구하는 일본 영화 「공각기동대」의 사이버 로봇은 우리에게 로봇과 인간의 경계를 고민하게 한다.
  어릴 때 설레며 기다렸던 만화 영화 속 로봇은 이제 우리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대상이 되었다. 놀라운 것은 방대한 데이터를 토대로 인공지능 스스로 인간의 오래된 역사와 지식을 축적하여 누구나 인정하는 상식이라는 것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미래에는 소프트웨어의 급진전으로 로봇은 스스로 원칙을 재설정하고 인간을 능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AI 로봇은 보이지 않는 것을 소망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노을 지는 붉은 하늘로부터 원시적 충만함을 누릴 수도 없을 것이다. 땡볕이 가라앉는 가을 어귀, 살갗에 스치는 바람 냄새를 또한 어찌 알겠는가? 우리는 다 내어주는 사랑도 하는 존재, ‘사람’이다. 연한 녹색이 넘실거리는 5월에 사람다움을 발산하는 미션을 수행해 보는 것은 어떻겠는가?

조성숙(국어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