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책] 기회의 책: 단테의 『신곡』
K-classic의 붐을 일으키고 있는 18살 천재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리스트의 ‘단테 소나타’를 이해하기 위해 읽었다는 『신곡』이 현재 품절이란다. 들어보았고 읽어보고 싶었던 고전에 대한 대중의 욕망에 임윤찬이 불을 지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런 품격있는 신드럼이 은근히 반갑다. 왜냐하면 나도 ‘내 인생의 책’으로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을 주저없이 꼽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문학자들과 판타지 관련 게임이나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물론 피아니스트에게까지 필독서의 대상이 된 『신곡』은, 중세말 기독교 중심 사회의 치부를 드러내며 르네상스의 여명을 감지하게 만드는 단테 일생의 역작이다. 베르길리우스의 가이드로 지옥, 연옥을 거쳐 베아트리체가 안내하는 천국까지로의 영혼 구원의 여정은 라임을 맞춘 100개의 노래로 구성된다. 각 노래는 사연 가득한 인물들과 장면 묘사로 숨이 가쁘다. 실제로 지옥의 아홉 골짜기에서 참혹한 벌로 몸부림치는 그리스·로마 신화의 인물들과 단테 시대의 실존 인물들의 모습은 영화<신과 함께>와 오버랩되어 신화와 역사가 버무려진 볼거리 가득한 판타지의 세계를 마치 눈으로 보는 듯 읽게 만든다.
나는 베르길리우스라는 안내자를 가진 단테가 부러웠다. 단테와 함께 지옥의 각 곡을 지나면서 ‘나의 가이드’에 대해 그리고 “과연 내가 지금 잘 살고있는 것일까? 탐욕을 부리는 것은 아닐까? 자연이라는 큰 순리에 역행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무엇을 낭비하고 어떤 부분에서 인색한가?’하며 계속 자신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사후 세계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을 연옥과 천국으로 단테가 위로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안도와 기쁨으로 책을 덮을 수 있었다.
그런데 내가 『신곡』을 내 인생의 책으로 택한 이유는 좋은 책이 주는 울림 때문만은 아니다. 나에게 있어 『신곡』은 ‘기회의 책’이기 때문이다. 기회를 준 인물이나 대상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품듯이 『신곡』은 나에겐 그런 대상이다.
이전부터 고전과 인문학에 관심이 있던 나에게 『신곡』은 고대와 르네상스를 연결하는 사통팔달의 길이 되어서 다른 고전을 읽도록 길을 열어주었고, 장르를 넓혀 인문학에서 미술 그리고 철학, 종교 등으로 나의 관심의 폭을 넓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다양한 분야에 펼쳐진 단테의 관심과 지식이 벅차서, 처음엔 외면하고 다음엔 감탄하면서 찾아보았던 인물과 사건은 상식과 지식으로 힘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음으로 나아가게 하는 자극제도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신곡』은 영어를 가르치는 나의 커리어에도 전환점이 되었다. 고전강독을 수업으로 할 수 있는 옵션이 추가된 것이다. 나의 연구에도 나의 경력에도 『신곡』은 확장과 융합의 기회를 준 것이다.
이제 나는 학생들과의 수업에서 나아가 더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신곡』 인문학 모임의 기회를 기대한다. 단테의 안내자가 된 베르길리우스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될 기회를!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다른 사람들도 『신곡』을 통해 자신만의 기회를 갖게 되기를 기대한다.
금동지(교양영어교육부 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