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책] 나대로, 나답게 사는 것을 두려워하는 그대에게

2022-05-11     언론출판원
『월든』핸리

  스물다섯, 나는 조금 늦게, 어쩌면 많이 늦은 나이에 군인 신분이 되었다. 자대 배치를 받은 첫날, 아무도 없는 빈 내무실에 대기하고 있는 나에게 긴장하지 말고 신문이나 읽고 있으라며 간부는 국방일보 한 부를 던져주고 나갔다. 국방일보라니? 신문의 제목에 나는 군인 신분이 되었다는 것을 다시금 실감했다. 기대하지 않고 펼친 신문이었지만 나는 그 신문에 실린 칼럼에 큰 위로와 격려를 얻었다. 문정희 시인의 “오늘보다 더 젊은 나는 없다.”라는 칼럼은 늦은 나이에 입대한 나를 격려했고 운명처럼 만난 그 칼럼 제목은 이후 내 삶의 좌우명이 되었다.

  살아오는 동안 나는 내 인생을 흔든 글을 수도 없이 읽었지만, 자대 배치 받은 첫날 읽은 문정희 시인의 칼럼과 함께 『월든』의 이 구절을 인생의 글이라 주저하지 않고 얘기한다.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듣는 음악에 맞추어 걸어가도록 내버려두라. 그 북소리의 음률이 어떻든, 또 그 소리가 얼마나 먼 곳에서 들리든 말이다. 그가 꼭 사과나무나 떡갈나무와 같은 속도로 성숙해야 한다는 법칙은 없다.” 삶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 누군가의 삶과 비교했을 때 내 삶이 나아 보이지 않을 때, 다른 이들은 다들 앞서 나가는 것 같은데 나만 뒤처져 있는 것 같은 두려움이 있을 때 나는 습관처럼 이 책을 펼쳐 저 구절을 찾아 위로와 격려를 구한다.

  소로우가 『월든』을 집필한 목적은 산업화와 근대화가 한창이던 미국의 주류적 삶에 저항하기 위함이었다. 매사추세츠 콩코드의 작은 호수인 월든에 오두막을 짓고 자급자족하는 2년간의 삶의 기록은 당시의 근대적 삶, 주류적 삶과 비교할 때 지극히 비주류적 삶이었다. 그는 자발적으로 비주류적 삶을 선택했고 그 삶을 통한 성찰을 월든 호수의 아름다운 모습과 문장에 담아 전달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내가 이 책을 통해 얻은 성찰은 근대화에 대한 저항, 물질문명에 대한 비판, 자연 친화적 삶 등이 아니라 나답게, 나대로 사는 것에 대한 용기였다.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우리의 삶은 주류적 삶일 수도, 비주류적 삶일 수도 있다. 주류적 삶과 비주류적 삶의 정의를 누가 하는 것인지도 모른 채 인생이 계획했던 대로 흘러가지 않으면 내 삶이 비주류적 삶이 되었다 생각하고 자신을 자책한다. 이런 자책으로 자신을 괴롭히는 그대에게 소로우의 나답게, 나대로 사는 것에 대한 용기를 전하고 싶다. 조금 늦으면 어떻고, 조금 다르면 어떤가. 그것이 있는 그대로 그대의 삶이며, 그러한 그대의 삶은 누구도 흔들 수 없는 그대만의 것이라고.

  자대 배치 받은 첫날, 나는 나 스스로를 위로했다. 괜찮다. 조금 늦어도 괜찮다. 근데, 지나고 보니 그게 그냥 나의 삶이었다. 자책할 필요도, 두려워할 필요도 없었던 그냥 나대로 사는 나의 삶이었고 나답게 사는 나의 삶이었다.

김종민(국어교육과 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