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근의 발밤발밤] 2022년, 새해의 기도

2022-01-03     언론출판원

  새해에는 나무처럼 묵묵히 살고 싶습니다. 남산 위에 낙락장송이 아니라도 작고 굽은 나무일지언정 꽃 피고 열매 맺는다면 어떠하겠습니까. 단단한 바위틈에 힘들게 뿌리내리고 사는 나무인들 어떠하겠습니까. 운명에 순응하며 불평이나 불만 없이 한 그루 나무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가파른 산길 어디 나무로 서서 산길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잡고 의지한다 해도 더없이 기쁘겠습니다.

  21세기를 사는 우린 너무 빠른 속도인 것 같습니다. 속도는 달려갈수록 더 빠른 속도를 요구하는 법입니다. 이미 속도의 단맛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육상 100m 달리기나, 42.195km를 쉬지 않고 달리는 마라톤의 세계 신기록이 매번 깨어지는 것은, 달리는 사람의 욕심 때문입니다. 세상은 달리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걷는 사람들이 주인공이었으면 합니다. 사람의 발은 속도의 용도가 아닙니다. 사색과 철학의 몫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냥 나무처럼 한 자리에 붙박혀 살고 싶습니다. 한 발자국 움직이지 않고 어린 자식 기르며, 무심한 듯 시를 빚어내고, 빈 가지로 바람을 아름답게 연주하는 자연의 나무로 살고 싶습니다. 그렇다고 나무가 세상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땅에 뿌리 내렸으니 땅의 이야기를 듣고, 하늘로 머리와 손을 두었으니 하늘의 노래를 다 알 것입니다. 한 자리에서 하늘과 땅을 다 아는 선지자이니 빠르게 달려가야 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사람은 입을 가졌지만, 나무는 잎이 있어 행복합니다. ‘입’이나 ‘잎’은 둘 다 ‘입’으로 발음되지만, 입과 잎은 다른 것입니다. 사람 사는 세상은 너무 입이 많습니다. 입이 말을 만들고, 말이 상처를 만들고, 상처는 분노를 만들고, 분노는 적을 만들고, 그리하여 입속에서 무기와 전쟁이 나옵니다. 하지만 잎은 햇살을 받아 나무의 영양분을 공급하고 사람을 위한 그늘을 만듭니다. 말하지 않고 시를 쓰는 나무의 은유처럼 온몸에 많은 잎을 달고 진실로 침묵하는 나무가 되고 싶습니다. 침묵으로 웅변하는 나무가 되고 싶습니다.

  사람은 너무 많은 기념일을 가지고 삽니다. 젊은 연인들이 사랑하는 데도 100일, 200일 등을 기념하며 삽니다. 나무는 때가 되면 꽃이 피고 때가 되면 열매가 익습니다. 나무의 생애는 위대하지만 제 몸속에 한 해가 지나면 하나의 동그라미, 나이테만을 가질 뿐입니다. 사람의 나이는 권위와 욕심이 되지만 나무의 나이는 아름다운 무늬가 됩니다. 저는 살아온 만큼 무늬와 향기를 가지는 나무가 되고 싶습니다.

  삶은 베풀 때 완성됩니다. 그늘 주고 꽃 주고 열매 주는 나무는, 추운 아궁이의 뜨거운 불이 되어주기도 하고 사람의 따뜻한 가구가 됩니다. 가진 것 다 주고도 풍요한 나무로 살고 싶은 것입니다. 새해에는 그대를 위한 나무가 되고 싶습니다. 그대는 나를 위해 나무가 되어주십시오. 우리 나무와 나무로 만나 더불어 사는 숲을 만듭시다. 그런 사랑이 만드는 새해 새로운 숲이 되고 싶습니다.

석좌교수·청년작가아카데미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