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 아고라] “엄마도 동문이야!”
“삼촌, 저 드디어 대학원 가요.” 대학교 졸업 후 바로 대학원 진학을 원했지만 집안 사정으로 취업을 해야 했던 상황을 안타까워했던 삼촌께 기쁜 소식을 전하러 갔다. 인근 국립대학교를 졸업한 나는 대학원도 모교로 입학할 생각이었는데, 멘토 역할을 해 주시는 삼촌은 경남대학교 대학원의 장학 제도에 대해 안내해 주셨다. 다행히 면접일 전에 그 사실을 알게 되어 구술시험을 보고 경남대학교 대학원생이 되었다. 장학 제도 덕분에 석·박사 과정 모두 전액 장학금을 받는 혜택을 누렸다.
1990년 2월 대학을 졸업하고 23년 만에 다시 시작하는 학교생활이 두렵기도 했지만, 수업을 하면 할수록 나의 만족도는 점점 커졌다. 수업 방식과 내용뿐 아니라 교수님들의 열정에 감동했다. 교수님들의 역량도 뛰어났지만, 철저한 수업 준비와 항상 연구하는 자세는 교수님들에 대한 나의 선입견들을 깨기에 충분했다. 수업은 토론하고 의견을 나누며 서로의 생각을 듣고 성찰하면서 알아 가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물론 과제에 대한 중압감도 있었지만 과제를 하면서 알게 된 내용과 서로 토의하면서 공유하게 된 내용들을 학습하다 보니 행복한 스트레스로 느껴졌고 이를 기꺼이 즐기게 되었다.
학교를 가는 날은 오전부터 설릑다. 이런 마음을 이해 못 하는 친구들은 “야, 이제와 공부해서 뭐하게? 머리가 돌아가지도 않고 눈도 곧 침침해질 텐데……. 공부 하나 안 하나 늙으면 다 똑같아. 밥이나 먹고 놀자.”며 저녁 시간에 학교 가는 나에게 핀잔을 주곤 했다. 남편과 아이들 문제로 매번 똑같은 푸념을 늘어놓는 시간보다 앎의 기쁨을 누리는 시간이 나는 더 행복했다. 책 제목과 노래 가사처럼 늙어 가는 게 아니라 익어 간다는 말에 크게 공감이 되고, 대학원 수업을 하면서 점점 익어가는 듯한 내가 참 좋았다.
사실 예전에는 경남대학교를 지방의 그저 그런 사립대학교로 치부했다. 내가 대학원을 진학하기 전 딸이 경남대학교를 입학했을 때에도 내심 못마땅했다. 그런데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들이 다양하고 학생들의 성장을 위해 대학이 애쓰는 모습들이 곳곳에서 보여, 보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은 재학 시절 미국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값진 경험을 하고 영어에 흥미를 가졌다. 무슨 일이든 스스로 잘하고 생각이 깊은 딸은 미국을 다녀와서 미래에 대한 꿈 그림을 크게 그렸다. 교수님들의 조언으로 각종 자격증을 취득하여 지금은 전공 학과와 연계된 곳으로 취업해 근무하면서 큰 꿈을 향해 천천히 나아가고 있는 듯하다. 그 모습이 참 대견스럽다.
딸이 졸업할 무렵, 아들은 타 지역에 있는 대학교에 입학했다.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입대하였고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와 대학 생활이 큰 의미가 없다며 자퇴 의사를 밝혔다. 복학하기까지는 시간이 있어서 설득을 해 보았으나 생각이 확고했다. 물론 요즘같이 학력 파괴 사회에서 대학 진학이 무의미하다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캠퍼스 생활을 누리며 경험하고 얻게 되는 깨달음은 인생을 살면서 큰 재산을 갖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의 대학원 생활을 돌아보았다. 처음에는 석사과정까지만 하려고 했으나, 배움의 기쁨을 알게 되고 존경하는 교수님들의 가르침을 더 받고 싶다는 생각에 박사과정까지 수료했다. 아들도 대학에 새로 입학한다면 교수님 이하 선후배, 동기들과의 생활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돌이켜 보니 인생에 있어서 모든 경험들은 헛된 것이 없고, 좋고 나쁜 경험의 재료들을 모아 ‘멋진 인생’이라는 훌륭한 요리를 만드는 것 같다. 대학 생활의 다양한 경험을 통해 아들은 많은 성장을 할 것이라 믿는다. 이런 나의 생각을 받아들여 아들은 올해 일반 학생 전형으로 경남대학교에 새로 입학했다. 1학년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을 먹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재도전을 결심한 아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다행히 같은 과 선배, 동기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학교생활을 잘하고 있다. 이번 여름방학에는 대외교류처에서 주관하는 해외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의미 있는 여름방학을 보내고 한층 더 성장한 모습으로 돌아오리라 확신한다.
경남대학교라는 교육기관을 매개로 하여 우리 세 모자녀(母子女)가 동문이 된 이 인연을 나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박혜진(대학원 교육학과 박사과정 수료, ‘모모 모임공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