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원 칼럼] 경남대학교와 나의 인연
지금도 기억이 선명하다. 석사를 졸업할 무렵 나는 대개의 대학원생처럼 박사 진학을 고민하고 있었다. 지도교수님은 이런 나를 무작정 학회로 이끄셨다. 그렇게 처음 참여한 학회가 마산 가곡전수관에서 열렸던 한국시가학회였다. 그곳에서 나는 책으로나마 뵈었던 선생님들께서 실제 살아 계신 분들이라는 것(?)을 확인하였고, 살 떨리는 학문 토론의 현장도 목격했다.
가곡전수관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 향한 곳이 이곳, 경남대학교였다. 녹음(綠陰)으로 가득한 교정의 한편에 마련된 발표장에서 내 눈에 담긴 것은 박사 논문을 준비하는 동년배 연구자들이었다. 이젠 고전문학이 인기 있다는 말은 입에 침을 바르고라도 할 수 없는데, 사실 그때도 별반 다르지는 않았다. 그래서인지 그들이 보여준 발표의 열기(熱氣)는 내겐 동경의 현장이자 마음의 위안처가 되었다. 그렇게 박사 과정의 문턱에서 주저하던 나는 경남대학교에서 정말 많은 것을 얻어 갔다.
제법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박사 학위를 마칠 무렵에 작은 번아웃 증후군을 경험했다. 박사 학위만을 보고 정신없이 달리느라 애써 외면했던 시간의 흔적이 성큼성큼 들이닥친 기분이었다. 약속한 원고와 논문, 그리고 과제와 강의들이 나를 매일같이 컴퓨터 앞으로 향하게 했지만, 내 마음 한편에 자리한 헛한 기분을 가늠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말로 설명하기 힘든 기회가 찾아왔다. 다행히도 들인 공에 비해 과분한 행운이 겹쳐 경남대학교 교정에 설 기회를 얻었다. 대학 본부에 최종 서류를 제출하던 날, 나는 괜스레 월영지 인근을 서성거렸다. 정신없는 세월 탓인지 어느덧 잊고 지냈던 첫 학회의 가슴 벅찬 기억은 순식간에 찾아와 찬물로 세수하듯 내 정신을 일깨웠다. 생각해보니 경남대학교는 남몰래 학문의 고비를 마주할 때마다, 나를 다시 이끌어줬던 것이다.
연구실 창문 너머로 만개한 벚꽃과 그보다 더 활짝 핀 학생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지금 이 상황이 너무 사실적이라 오히려 꿈을 꾸는 듯하다. 공부해서 가장 보람찬 것은 좋은 논문이나 책을 써서 얻는 만족감이 아니라 학생들과 공부하면서 얻는 기쁨에 있다는 지도교수님의 말씀이 귀에 어른거린다. 내게 찾아온 큰 기회에 감사하며, 국어교육과 학생들이 꿈을 이루는 것에 조력할 수 있는 교수가 되기를 다짐한다.
이승준(국어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