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 칼럼] 다시 지나가는 봄
분명 어제는 없었는데 오늘, 정원에 짙은 분홍과 연한 분홍이 어우러진 해당화가 피었다. 그새 마주보고 있던 꽃사과 나무엔 진분홍의 꽃이 황홀하다. 메말라 절대 살아 있지 않을 것 같던 포도나무에도 분홍색이 살짝 묻어 있는 연녹색의 잎이 피어나고 있다. 역시 봄이다. 분명 미친 듯 아닌 듯 날씨는 바람 불고 추웠건만 내 집 앞마당에도 다시 봄이 오고 있는 사실에 요즘 우리반 고등학생들이 자주하는 표현으로 ‘심쿵’했다. 이런 나의 마음은 늦은 저녁, 꽃비 내리는 강의실에서 만난 ‘한시’에 또 ‘심쿵’ 한다.
草箔遊魚躍 초박유어약
楊堤候鳥翔 양제후조상
耕皐菖葉秀 경고창엽수
饁畝蕨芽香 엽묘궐아향
김극기¹의 전가사시(田家四時) 중 봄에 해당하는 내용의 일부이다. “풀로 엮은 통발에는 물고기들이 마냥 뛰어 놀고, 버드나무가 서 있는 뚝에는 철새들이 날아오르고 있다. 밭머리에서는 어느새 창포 잎이 우뚝 자라 있고, 점심을 먹으며 보니 고사리 싹이 싱그럽게 돋아나 있다는 것으로 농부들이 느낄 수 있는 봄의 풍경”²의 한시이다. 분명 봄(春)은 없는데 봄이 있다.
정지상³의 송인(送人) 수업이 이어지고 시는 향기롭고 매력적으로 내 앞에 다가섰다.
片心山盡處 편심산진처
孤夢月明時 고몽월명시
南浦春波綠 남포춘파록
君休負後期 군휴부후기
“외로운 이 마음은 산 저 끝서 기막히겠고, 고독한 그대 꿈은 달 밝은 젠 깨게 될 텐데
남포에 봄 물결이 푸르를 때면 그대여 뒤에 만나잔 기약 저버리지 마시오.”
‘심쿵’ 김소월의 ‘진달래꽃’ 보다도 집으로 돌아가는 그 밤에 가로등에 비친 벚꽃들이, 바람에 날려 흩어지는 꽃잎을 보는 순간 울고 싶어졌다.
작년 봄에도 이렇게 예쁘게 피었었나? 석사과정을 마치기 위해 분주하기만 했던 지난 해, 그냥 봄을 지나가게 했다. 그리고 지금은 박사과정으로 학업과 생업 사이에서 더 많은 분주함으로 봄을 지나가고 있다. 다시 지나가는 봄에게, 무심히 지나가는 내 청춘의 시간에게, ‘무엇인가’, ‘언제인가’를 확약받고 싶은 내 마음이, 아니 그것을 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들켜 버린 듯 고려의 시인이 쓴 ‘한시’를 읽으며 시간을 건너 ‘심쿵’했다.
오늘도 지나가는 봄 앞에서 ‘심쿵’한다. 아, 월영지에 봄빛이 더욱 푸른 봄이다.
정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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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려 명종 때의 시인으로 호는 노봉이다. 어려서부터 문명이 높았다. 저서에 『김거사집』이 있다.
2. 이 원고에서 나오는 한시 번역은 경남대 국어교육과 변종현 교수가 번역한 것이다.
3. 고려 인종 때 문신, 대시인. 초명은 지원. 호는 남호. 고려의 대표적 시인이다. 그가 쓴 서정시는 한 시대 시의 수준을 끌어올렸고, 그는 대대로 시인의 모범이 되었다.
*정현숙: 우리 대학 교육대학원을 졸업하고, 대학원 교육학과 교과교육전공(국어) 박사과정에서 공부하고 있다. 수필가로 등단하였고 충무고등학교에서 꿈 씨앗을 뿌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