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영지] 첫째의 책임감
“너가 잘해야 동생도 보고 배운다. 그러니 잘해야 돼.” 내 나이가 10살이 되던 해부터 지금까지 항상 들어왔고, 듣고 있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은 내게 큰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주변 친구들과 달리 혼자였던 나는 동생이 너무 갖고 싶었다. 부모님께서는 원래 하나만 낳아서 잘 키우려 했다. 그러나 내 소원으로 인해 둘째를 낳게 되어서 그런지 나와 동생은 나이 차이가 많이 난다. 7살이나 차이 나는 어린 동생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부모님은 동생을 질투하지 않게 날 칭찬하고 인정해주며 사랑표현을 자주 해주었다. 또, 내가 원해서 생긴 동생이라 질투가 아닌 애정을 쏟았다. 그래서 나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하는 육아를 도우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그런지 동생도 나를 잘 따랐다. 동생은 점점 커가면서 나의 행동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나는 불안할 때마다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이 있는데 동생도 아직 그 버릇을 못 고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여기저기 양말을 벗는 행동, 신발을 꺾어 신는 행동 등 나의 사소한 버릇을 전부 동생이 따라 하고 있었다.
부모님은 그럴 때마다 내게 “너를 보고 배우니까 이제 넌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래서 나는 확실히 본보기가 되었다. 동생은 고민이 있을 때 부모님보다 나에게 먼저 털어놓고 내가 조언해주는 대로 행동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항상 내가 무언가를 하기 전 다시 한번 동생에게 모범을 보일 수 있는지 생각하고 행동을 조심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가끔은 동생에게 더 좋은 기준이 되어주지 못해 반성하는 계기가 된다.
첫째로서 나는 여러 혜택을 받았다. 비싼 학원, 과외, 인터넷 강의, 자율학습, 예체능 등 안 해본 건 없었다. 또래에 비해서 하고 싶은 건 다 할 수 있었다. 내가 첫째라서 부모님은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셨다. 그러나 지금 동생에게 해주는 지원은 첫째인 내게 해주던 지원보다 덜하다. 저번에 동생이 이에 대해 불만을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언니는 다 해줬으면서 왜 나는 안돼?” 나는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부모님의 처지에서 생각해보면 첫째로 이미 경험을 해봤으니 제일 나은 선택을 동생에게 했을 거라고 예상된다. 동생은 모든 혜택을 받은 첫째인 나를 부러워했지만 난 동생이 부러웠다. 혜택을 받은 게 많은 만큼 부모님의 기대 또한 함께 높았기 때문이다.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을 때 부모님의 실망감은 말로 할 수 없는 부끄러움으로 내게 밀려온다.
평생 첫째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울 때가 많다. 그러나 첫째라서 책임감과 배려심을 일찍 깨달을 수 있었다. 만약 동생이 없었다면 나의 삶이 정말 허전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동생은 내게 많은 걸 깨닫게 하고 노력하게 하며 어떨 때는 자신감을 주는 존재다. 주변에 첫째인 친구들이 항상 동생 때문에 양보한다며 불만을 가지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이런 마음을 바꿔 양보할 수 있는 능력과 배려심을 키우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