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근의 발밤발밤] ‘청솔당’에 불 밝힌 이유는

2021-03-04     언론출판원

  고등학교, 대학을 이곳 ‘마산’에서 다녔다. 진해 갯가에서 대처 마산으로 유학을 온 셈이었다. 버스나 기차를 타고 ‘통학 유학’을 했다. 1985년 2월, 대학을 졸업하고 마산과 작별했다. 2010년 대학으로 돌아오기까지 26년간 마산은 내게 무연고 도시였다. 그 사이 마산은 ‘창원시’로 통합이 되고 마산합포구와 마산회원구로 나누어졌다.

  2년 전 창원으로 입성을 했다. 그 2년 동안 의창구에 살았다. 두 해를 살고 뭘 알 수 있겠냐 만, 창원은 뿌리 내리기 힘든 ‘분지’였다. 세 든 집의 외형은 그럴 듯했다. 부실 공사로 비가 스며들어 벽에 곰팡이가 슬었다. 비 온 다음 영혼에 곰팡이가 핀 느낌에 불쾌해 시를 읽고 쓰기 힘들게 했다.

  창원 집 계약 기간이 끝나면 집사람은 창원을 떠날 생각이 확고했다. 결국 마산의 원형인 마산합포구에 남향의 집을 구했다. 집을 구한 뒤 내가 놀 ‘놀이터’까지 구했다. 13층 건물에 11층에 위치한 작은 공간이었다, 사람 좋아하는 내가 친구들과 더불어 언제든 차 한 잔을 나눌 수 있을 정다운 곳이었다.

  ‘제금’나기에 이런저런 필요한 것을 갖추고 지난 27일 오픈을 했다. 나와 더불어 오래 떠돌았던, ‘귀뚜라미’ 소리를 듣는다는 ‘청솔당’이란 당호를 달았다. 경남도립미술관장인 다천 선생의 글씨다. 붓의 힘이 당호를 살아있게 한다. 붓이 지나간 먹 사이에 숨은 비백(飛白)이 같이 숨을 쉰다. 당호 아래 놓아둔 책상에 앉으면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창은 서쪽으로 났는데 무학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무학산의 옛 이름이 ‘두척산’이다. ‘나는 학이 춤춘다’는 일제강점기의 창씨 개명된 이름보다 두척산이란 이름이 좋다. 저 창을 나는 감히 ‘두척관창(斗尺觀窓)’이라 이름 하련다. 두척산의 봄, 여름, 가을, 겨울과 함께 남은 시간 천천히 흘러가고 싶다.

  가까이에 용마산과 마산도서관과 나에게 시인의 꿈을 꾸게 한 고등학교 모교 운동장과 교사(校舍)가 보인다. 모교는 내년이면 개교 100주년을 맞는다. 지척에서 모교 100주년을 맞이하는 일 또한 영광이다. 재학 시 교지의 이름이 ‘설송(雪松)’이었다. 설송은 ‘히말라야시다’를 뜻한다. 당시 교지에 졸업생 모두가 떠나면서 한 마디를 남겼는데, 나는 ‘문학과 함께 3년을’이란 한 줄을 적었다.

  그때 이미 내 운명은 결정되었다. 나는 그 운명을 거부하지 않고 부지런히 꿈꾸는 길을 걸어왔다. 딴 길을 가지 못한 것은 내 재주가 그것뿐이기 때문이다. 그 덕에 나를 시인으로 만든 자양분을 나눠준 모교를 바라보며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인생이 무엇인가. 나는 그 답을 알지 못한다. 다시 빡빡머리 학생으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똑같은 인생길을 걸어갈 것이다. 빠른 속도는 아니지만 천천히 걸어 내가 꿈꾸는 인생의 끝에 닿을 것이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궤도를 이탈하지 않고 목적지에 닿을 것이다.

석좌교수·청년작가아카데미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