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근의 발밤발밤] 제자에게 2021년 새 달력을 보내며
2021년 새 달력을 자네가 입사한 회사 주소로 보냈네. 자네는 선생의 선물을 받고 대수롭지 않는 흔한 새해 달력이란 생각을 하지 않길 바라네. 대학 시창작강의실에서 함께 공부한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란 시의 ‘사람이 온다는 건/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그는/그의 과거와/현재와/그리고/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는 앞부분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네.
2021년 새 달력도 실로 그러하네. 달력을 받는 일 또한 ‘어마어마한 일’이네. 달력 속의 1년 365일이 오지 않는가. 365일에는 ‘8천760시간’이 있네. 그것은 ‘52만5천600분’이네. 또한 ‘3천1백만53만6천초’이지 않은가. 달력은 그 시간에 대한 값을 요구하지 않네. 내년이면 또 그만큼 채워주지 않는가. 그 속에는 365일 해가 뜨고 달이 뜨네. 별들은 제 자리에서 빛나거나 사라지기도 하네. 비가 오는 날이 있을 것이네. 눈이 오는 날이 있을 것이네. 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자네. 그럼 시간이 무한한가 아니면 유한한가? 시간은 무한한 것이네. 그러나 그 무한한 시간 속에 자네의 시간은 유한하네. 물론 나의 시간 역시 유한하네. 자네는 그 답을 알 것이네. 생각해보게. 내가 강의실 칠판에 크게 쓴 이 단어를. ‘Memento mori’ 라틴어로 ‘네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이네. 인간은, 인생은 생로병사를 통해 무한한 시간을 다 쓰지 못하네. 허나 달력은 무한한 시간을 선물하는 것은 아니네. 유한한 시간을 생각하라는 선물이네.
내가 메멘토 모리가 생긴 이유에 대해 이야기 했든가. 로마시대 원정에서 승리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행진을 할 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이 말을 큰소리로 외치게 했다고 하지. ‘메멘토 모리!’ 승리로 우쭐대지 말라. 오늘은 개선장군이지만, 언젠가는 죽는다. 겸손을 가르치는 뜨거운 말이다.
아메리카 ‘나바호 인디언’도 그렇게 가르쳤다고 하네. ‘네가 세상에 태어날 때 너는 울었다. 하지만 우리는 기뻐했다. 네가 죽을 때 우리는 울어도 너는 기뻐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아라.’ 달력 앞에서 날이, 시간이, 분과 초가 삶에 열중하라는 주문이네. 달력 앞에서 항상 신중한 자네가 되길 바라네.
달력의 365일 그날이, 나는 칼의 ‘날’이라고 생각하네. 그러기 위해서 칼날을 벼리듯 갈고 갈아서 자네를 위해 쓰기 바라네. 달력을 받는 일이 어마어마한 일이지만, 그 달력을 자네 앞에 세워두는 일은 얼마나 긴장되는 일인가. 2021년을 그렇게 살길 부탁하네. 시간이 황금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하루하루를 칼처럼 갈아서 쓰게. 그냥 흘러가는 시간이 있게 하지 마시게. 자네의 하루를 헛되이 보내지 마시게. 1년이 지난 뒤 달력이 자네의 역사처럼 남게 하게. 먼 훗날에도 자랑이 되게 하게. 우주의 무한한 시간에 자네의 생이 항성처럼 빛나는 별이 되게 하게. 송구 경자(庚子)근하 신축(辛丑)! 두루두루 만사형통하시게. 세상이 아무리 힘들어도.
(석좌교수·청년작가아카데미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