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 아고라] ‘씨’를 잘 가다듬자

2018-04-09     언론출판원

  요즘 Me too를 비롯한  많은 사건, 사고들을 접하면서 다시 한 번 인간 본연의 바탕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그 해결책은 깨달음으로부터 온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씨’를 생각하게 되고, 뿌리, 근본이라는 말을 헤아려 보게 된다. 마음을 쓰는 태도, 본바탕의 마음자리인 ‘마음씨’를 비롯하여, 말하는 태도나 버릇인 ‘말씨’나 겉모양이나 움직임을 곱게 매만진 모양인 ‘맵씨(맵시)’, 물건을 만들거나 어떤 일을 치러 나가는 재주인 ‘솜씨’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근본이 되는 ‘씨’는  다양하다. 이러한 인간의 뿌리인 ‘씨’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잘 가다듬고 갈무리해 나간다면, 인간의 이름으로 하기 어려운 낯 뜨거운 일들은 우리 주변에서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먼저, ‘마음씨’를 잘 갈무리하자. 나는 어렸을 때 시골 집 뒤란에 있는 채소밭을 매일 가꾸시던 어머님을 생각하고 향수에 젖곤 한다. 그래서 “어머님, 당신의 채마밭엔 내 마음도 키웁니다.”라는 시구(詩句)도 자연스레 나온다. 이처럼 우리가 마음씨를 잘 갈고 닦는다면 인륜을 저버리는 파렴치한 짓거리가 행동으로 옮겨질 수는 없을 것이다. 매일 수염을 깎듯 마음도 매일 다듬어야 한다. “나날이 새롭다.”란 말은 그래서 나온 것이 아니겠는가.

  마음에 욕심이 생기면 차가운 못에 뜨거운 물결이 끓듯, 숲속에서도 그 고요함을 보지 못한다. 반면, 마음을 비우면 저자거리에 앉아서도 시끄러운 줄 모르고 본체를 파악할 수 있다. 마음은 “머문 다음에 정해지며, 조용해져서 편안해진 후에야 생각할 수 있게 되어 사물의 이치를 터득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사람됨의 근본인 마음씨를 평소에 잘 다듬고 갈무리해야 한다.

  다음, ‘말씨’는 인격의 표현이다. “태양은 우리들에게 빛으로 말을 하고 / 향기와 빛깔로 꽃은 얘기한다. / 구름과 비와 눈은 대지의 언어 // 지금 자연은 온갖 몸짓으로 가을을 얘기한다. // 벌레들이 좀 먹은 / 옛 탁자 앞에서 / 가짜 사랑을 사람들은 말하고 있다.” J. 플랭의 시 <말>에 나오는 구절이다. 자연물이 온갖 몸짓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방법도 말의 일종이다. “가루는 칠수록 고와지고 말은 할수록 거칠어진다.”는 조상들의 사려 깊은 말씀을 깊이 새겨 보자. 말씨는 그 사람의 인격을 알아보는 척도가 된다. 자신감으로 가득 찬 사람들은 오히려 말이 적다.

  세 번째, ‘맵씨(맵시)’는 진정 우리네의 멋이다. 한복·버선·기와지붕의 곡선이 주는 아름다움은 확실히 맵시의 한 전형이다. “여봐라, 춘향아! / 저리 가거라. / 가는 태를 보자. / 너와 나의 만난 사랑 / 연분을 팔자한들 팔 곳이 어디 있어 // 생전 사랑 이러한데 / 어찌 사후 기약이 없을쏘냐.” 춘향의 여자다운 맵시에 반해 신분을 초월한 사랑을 결심한 이 도령이 저승에 가서까지도 사랑하겠다는 마음을 읊은 춘향가의 한 구절이다. 이렇게 숨기고 은근하게 엿보이게 하는 데서 풍기던 품위의 맵시는 진정 우리의 멋이었다. 그런데 오늘날은 어떠한가. 거리에서 보는 남녀구별도 잘 안 되는 차림과 머리, 심지어는 염색까지, 그리고 노골적인 노출로 몸매를 과시하려는 사람들의 모습은 오늘날 증가하고 있는 성범죄의 씨앗을 스스로 안고 있다고 보아진다.

  끝으로, ‘솜씨’는 능력의 척도다. 도공(陶工)의 손끝에서 빚어지는 자기에는 푸른 하늘의 공간 속에 나무가 자라고, 새가 앉고, 나비가 날아다니는 신비가 깃들어 있었다. 이 같은 솜씨에는 단순한 기술이 아닌, 제작자의 정성이 함께 하고 있어 생물과 같은 혼이 살아 숨 쉰다. 그 얼마나 많은 정성과 노력을 기울인 결과인가. 내 손에서 풀려나는 이 색실 한 타래에서 아담한 마음들이 꽃처럼 피어날 때 모두들 그 솜씨에 놀라게 된다. 심혈을 기울인 솔거의 ‘노송도’에는 날아가던 새들이 앉으려다 떨어졌다지 않은가. 우리가 사회생활의 터전으로 삼는 직장의 업무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능력을 모두 발휘하는 열성을 보이는 창의적이고 다부진 업무 처리 능력은 사회인의 척도다.

  무슨 일이든지 최선을 다하는 정성과 옥을 다듬어 그릇을 만드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이 사회는 한결 살 맛 나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최재섭(동문 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