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영지] 1115호, 1년간의 종착역

2020-02-20     박수희 기자

  나는 책 읽기를 좋아했다. 자연스레 글쓰기도 좋아졌다. 글짓기 대회 상을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받을 때면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시인이었던 친척도 내 글을 봐주며 각종 칭찬을 늘어놓았다. 점점 더 욕심이 났다. 친구들과 토론 수업도 듣고 독서 모임도 하고 구청에서 진행한 문학 캠프에도 참가했다. 정말 이 길이 내 길이라고 자신했었다.

  그러던 도중 슬럼프가 찾아왔다. 막힘없이 술술 써지던 펜 끝이 끈적거리는 검은 잉크에 잡아먹힌 듯 움직이지 않았다. 겨우 이런 슬럼프에 버티지 못하는 나 자신이 참 못나 보였고 내 능력은 여기까지구나 싶었다. 그렇게 펜을 놓아버렸다.

  처음엔 막막했다. 길을 잃어버린 느낌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다시 길을 찾고 목적지를 정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겨우 마음을 다잡았을 때, 우연하게도 부산시청에서 주최하는 글짓기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잡다한 생각은 비운 채, 담담히 그날 주제인 ‘바다’에 대한 글을 써 내렸다. 그러자 1등이라는 좋은 결과가 나에게 다가왔다. 머릿속이 깨끗해지는 순간이었다. 글을 직업으론 못 삼아도 평생 버리진 않겠다고 결심하게 된 시점이었다.

  이후 새로운 꿈을 가지고 대학에 들어왔다. 처음 한 학기 동안은 여태 안 해본 많은 경험을 해보았다. 1학기가 끝나고 대학 생활이 익숙해질 무렵, 2학기는 시작되었다. 약속 때문에 정문으로 내려가던 9월 넷째 주. 그날따라 유독 경남대학보사 대자보가 크게 보였다. 친구들에겐 말도 없이 남몰래 번호를 저장해 연락을 걸었다. 새로운 공간에 혼자 가는 걸 유독 싫어하던 내가 그날따라 무슨 생각이었던 건지 아직도 알 수 없다.

  낯선 공기와 낯선 사람들에 둘러싸여 긴장되던 면접이 끝나고 나는 2학기 유일한 수습기자가 되었다. 당시 국장님과 동기 1명 빼고는 다 어색했기에 적막 가득한 시간이었다. 문화부 기자가 되곤 많은 게 달라졌다. 왜인지 국장님의 기대는 높았고 동기들은 갑작스레 친하게 다가왔으며 배우지도 못했던 이론들을 바로 실전에 적용해야 했다. 나름 정신없었지만 학보사에 정을 붙이는 시간이었다.

  문화부장을 기대하던 내게 온 서약서에는 편집부국장이라는 글자가 찍혀 있었다. 1년 반으로 학보사 생활을 끝내려 했는데 졸지에 2년 반이나 남게 되었다. 마음에도 없던 부국장 직책을 맡으려 얼마나 싸워댔는지 처음부터 진이 빠졌다. 편집국장은 더더욱 그랬다. 솔직히 할 사람만 있었으면 넘겨주고 싶었다. 2019년이 어찌나 더디게 가던지.

  누군가의 밑에서 일하는 것과 위에서 일하는 건 천지 차이였다. 나 자신이 아닌 단체를 생각하게 되었고 도전보다는 안정을 바라게 되었다. 비겁한 말이지만 적어도 내가 국장일 때는 아무 일도 없길 간절히 소망했었다. 1,100호부터 1,115호까지 총 16번의 학보. 이제 마지막 결과물이 나왔다. 평가는 후배들의 몫으로 남기며 이제 경남대학보사 편집국장이라는 1년간의 종착역에서 내리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