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회 10·18문학상 현상 공모 - 수필 '터닝포인트를 기다리는 당신에게'
제33회 10·18문학상 현상 공모 - 수필 '터닝포인트를 기다리는 당신에게'
  • 박예빈 기자
  • 승인 2019.11.20 17: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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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 부문 당선작: 김다영(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4)

 

터닝포인트를 기다리는 당신에게

 

  당시 두 달간의 유럽 여행을 준비하던 나에게 느닷없이 들려왔던 사고 소식이었다. 헝가리는 곧 내가 가게 될 여행지이기도 했고, 어쩌면 나에게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기도 했다. 기사가 보도된 이후 가족들과 친구들은 내가 떠올랐다며 종종 연락이 오곤 했는데, 고인을 향한 짧은 애도의 표현 후 돌아오는 말은 ‘조심해라’, ‘무섭지 않냐’, ‘그래도 대단하다’였다. 아마 내가 24살 여자이고, 혼자 떠나는 장기여행이기 때문이었겠지. 나는 당당하게 혼자 떠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고 실제로 그랬으면 하는 마음에서 괜찮다고, 아무렇지 않다는 말을 하고 다녔다. 하지만 출국하기 며칠 전, 술에 잔뜩 취해 장난처럼 유서를 쓴 것을 보면 나는 내 생각보다 많이 겁이 났던 것 같다.

  지금 돌이켜봤을 때 황당한 사건들이 있다. 처음 도착한 나라 스위스는 평화롭고, 사람들도 친절했으며, 물가가 비싼 만큼 모든 시설이 잘되어 있었다. 하지만 여행 첫날부터 겪어야 할 시련은 캐리어 분실이었다. 당시 밤 열 한시였기 때문에 공항에서 급하게 서류작성을 하고 호스텔에 도착했는데 수중에 내가 가진 것은 돈, 여권, 그리고 핸드폰뿐이었다. 때문에 잔뜩 기름진 몸을 물로만 적시고, 입었던 옷을 수건 삼아 물기를 닦았던 기억이 난다. 그나마 정말 다행이었던 것은 이틀 뒤 숙소로 무사히 캐리어가 도착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액땜이길 바랐으나 액땜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두 번째 국가인 이탈리아에 도착하자마자 유심이 터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미 세 시간 기차연착으로 밤이 되어버려서 숙소가 있는 도시로 급하게 이동해야 했는데 유심을 사용할 수가 없다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현지인들에게 길을 물어보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그들의 도움을 받아 기차를 타고 숙소까지는 잘 도착했는데, 다음 날 아침 유심사에 연락해보니 본인들도 상황을 잘 모르겠다며 일단 대기해달라는 것이다. 언제까지나 대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나는 여행을 계속해야만 했다. 그래서 숙소에서 목적지 하나만 지도에 찍고, 그렇게 도보로 20분이 걸리는 거리를 며칠간 기억해가며 다녔다. ‘빨간 길이 보이면 왼쪽으로 꺾기’, ‘길이 두 갈래로 나뉘면 오른쪽’, ‘기억했던 길과 다르면 다시 되돌아가자’라고 생각하면서. 메신저도, 전화도 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했던 도전이었기 때문에 정말 아찔했다.

  혼자 떠난 여행이었지만 동행들과 함께하는 시간도 길었다. 우연히 숙소에서 마음이 맞는 동행을 만난 경우, 혹은 인터넷 카페에서 나와 비슷한 일정을 가진 사람을 발견한 경우에는 그들과 동행했다. 정말 신기했던 것은 헝가리 근교 도시에서 만났던 동행분이 내 중학교 선배였다. 그 넓은 유럽 땅, 헝가리에서, 마산에 사는 중학교 선배를 만나기가 어디 쉬운 일이던가. 그 이외에도 성악 강사, 타투이스트, 신인 배우 등 평소에는 만나기 쉽지 않은 직업군을 가진 사람들, 교환학생을 하다 여행 온 학생들, 그리고 졸업 후 시험 준비를 하다가 오게 된 취업준비생들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그들과 서로의 일상, 혹은 여행에 대해 공유했다.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여행지도 가보고, 서로 사진도 찍어주고, 나란히 앉아 야경을 보고, 또 잔디에 누워 맥주도 마실 때면 행복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때 마음이 일렁이던 것이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여행을 떠나면서 했던 스스로와의 약속, 혹은 목표라고 할 수 있었던 것은 현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이었다. 그러다 오스트리아로 가는 기차 맞은편에 앉았던 멕시코 중년 여성과 대화를 하게 되었는데 그녀는 나에게 일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물었다. 또 하루는 체코에서 같은 숙소를 쓰게 된 싱가포르 여성이 여전히 한국에서는 여자가 요리를 꼭 잘해야만 하는지를 궁금해하기도 했다. 나는 그들에게 나는 역사를 제외한 일본의 문화를 좋아한다고. 지금은 여자가 요리를 꼭 잘할 필요는 없으며 한국 문화는 계속 변화하고 있다고 말해주었는데, 생각보다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한국 문화를 궁금해한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폴란드에서는 우연히 18살 소년과 저녁을 먹게 되었다. 폴란드에서는 확실히 다른 나라에서보다 나에게 꽂히는 시선이 잦았는데, 이유를 물으니 동양인들을 보기 어려워서 그런 것이라며 절대 나쁜 의도를 가진 것은 아니라고 했다. 명백하게 동양인인 나에게 독일인이냐고 물었던 폴란드인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나는 그들에게 용기 내어 대화를 걸었던 자신이 대견하게 느껴졌고, 그들과 조금 더 깊이 있는 대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또 다양한 나라의 문화에 대해서 알고 싶다는 생각에 이제까지는 느끼지 못했던 강렬한 학구열이 샘솟았다.

  여행에서 돌아온 지금, 그 두 달 동안의 시간이 나를 많이 변화시켰다고 자부한다. 예상 밖의 상황이 처했을 때 침착하게 다음 대안을 생각하기도 하고, 다양한 스타일의 여행자들과 함께하면서 의견을 맞춰가며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반대로 내 의견을 피력할 수 있게 되었다. 겁을 잔뜩 먹고 떠난 여행이었지만 사람 사는 곳 다 똑같다는 것도 느꼈고, 혼자 잔디밭에 누워 체리를 먹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도 알게 되었다.

  터닝포인트. 내 인생에 있어 터닝포인트가 될 계기가 있을까. 믿지 않으면서도 항상 꿈꾸듯 바라왔었던 것 같다. 정말 감사하게도 나는 이번에 떠난 유럽 여행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시간이 없거나 돈이 없어서 머뭇거려지는 예비 여행자들에게 나는 말하고 싶다. 일단 부딪히라고, 계속 미룬다면 시작조차 할 수 없고,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되는 순간과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을 것이다. 여행이 아니더라도 상관없다. 언제든, 어디에서든 자신이 원하는 것에 도전하고 뛰어드는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다.

 

10·18문학상 수필 심사평

  수필을 소재의 문학이라고도 한다. 수필은 소재와 주제가 가장 중요하다는 말이기도 하 다. 미래수필에서 요구되는 수필의 소재라면 시대의 핵심을 관통하는 주제의식, 원형탐색과 동화적인 상상력, 리듬성, 개성적인 문장력, 끊임없는 실험정신을 추구하는 수필로 요약된다. 이러한 소재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되고 구조적 견고성을 갖출 때 일단 좋은 수필로 평가받을 수가 있다.

  이러한 좋은 수필의 기준을 생각하면서 올해 10·18 문학상에 투고된 수필작품을 세밀하게 읽었다. 요즘 대학생들의 사유가 어른들이 생각하는 만큼 어리지도, 유약하지도 않다는 점에서 큰 위안을 얻었다. 당선작을 뽑는 과정에서 마지막으로는 「터닝 포인트를 기다리는 당신에게」 와 「수박」 두 작품을 두고 고심을 하였다.

  「터닝포인트...」는 무엇보다 소재가 참신했다. 여대생의 그 담대한 도전정신이 돋보였다. 그것을 문장으로, 문학으로 형상화 내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미래에 큰 수필가 탄생을 기대할 수도 있었다. 「수박」은 구성이 탄탄한 작품이었다. 수필을 창작하는 기본기가 묻어나는 섬세한 작품이기도 했다. 독자가 요구하는 보편성과 참신성을 확보할 수 있다면 앞으로 좋은 작가로서 성장할 수 있음도 확인했다.

  고심 끝에 참신한 소재와 용기를 선택한 「터닝포인트...」를 당선작으로 뽑는다. 계속해서 수필 쓰기에 도전하여 큰 작가로 성장하길 바란다.

백남오(문학평론가, 초빙교수)

 

10·18문학상 수필 당선 수상 소감

  많은 사람이 그렇듯 저 또한 여행을 좋아합니다. 그러다 저는 ‘혼자서’, ‘장기간’ 유럽 여행을 가보고 싶다는 꿈이 생겼습니다.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유럽 여행을 준비하게 되었고 마침내 5개월 전 그 여행에 다녀왔습니다. 사실 여행 기간 전체가 마냥 즐겁지는 않았습니다. 제 글에도 고생담을 적긴 했지만, 그것은 일부이고, 항상 변수가 잇달았습 니다. 그럴 때마다 혼자라는 것이 외롭기도 하고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하지 만 이번 여행을 통해 저는 갑작스러운 사고에 대처하는 법을 배웠고, 나의 결정에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극도로 행복한 순간을 느끼기도 했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제 세상을 더 넓히고 싶어졌을 때 깨달았습니다. ‘아, 내가 다녀왔던 여행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었구나.’

  무언가를 꿈꾸고 도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성공했을 때의 자신보다는 실패했을 때 상처받을 자신을 먼저 떠올리고 그렇게 도전하는 것을 주저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사소한 도전 중 하나가 자신에게 변화를 주고 좋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면 몇 번이고 도전해도 괜찮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새로운 시도는 힘들고 그 과정은 아프겠지만 아픔을 겪는 것은 결국 자신의 삶을 풍성하고 행복하게 해줍니다.

  마지막으로, 글을 쓸 기회를 주신 언론출판원, 경남대학보사에 감사합니다. 작가 지망생의 길을 걷고 있는 저에게는, 제 이야기를 많은 사람에게 전할 수 있었던 10·18 문학상이 정말 의미가 깊습니다. 이번 계기를 발판삼아 앞으로도 더 많은, 좋은 이야기를 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김다영(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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