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하늘소는 하늘소과에 속하는 곤충으로 천연기념물 제218호이며 학명은 Callipogon relictum SEMENOV이다. 중국 만주 동북부, 동부시베리아 우수리지방 및 우리나라에 국한하여 분포되어 있다. 유충은 서나무에서 서식하며 한 나무에 2∼3마리 또는 3∼4마리를 볼 수 있다. 생나무보다는 다소 썩은 나무에 산란하는 듯하며 알의 크기는 2.60×6.72㎜이며 산란수는 93개이다.
봉급쟁이 삼십 년 딱정벌레 같아도
하늘소
장수하늘소는
천연기념물 218호다.
졸시 <장수하늘소>
장수하늘소가 서나무와 신갈나무숲에서만 살 듯 나는 삼십년을 분필을 먹고 살았다. 나의 서식지는 교직이었다. 교직에서 시를 쓰며 삼십 년을 보냈다. 교직과 시 쓰기는 나에게 서나무와 신갈나무숲이었다. 신갈나무의 자람 터는 동족인 다른 참나무보다 훨씬 열악하다. 크고 작은 산의 능선 부근이 그에게 주어진 공간이다.
등산길에 산마루에 올라서서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고개를 들면 눈에 들어오는 나무가 대부분 신갈나무다. 이 땅은 봄은 늦게 오고 겨울은 빨리 오며 춥고 먹을 것이 적어 배고픈 곳이다. 메마르고 양분도 적으며 바람까지 항상 불어대는 곳에서 신갈나무는 뿌리를 박고 버텨야만 한다.
우리나라 산의 높은 곳은 대부분 신갈나무가 차지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만날 수 있는 신갈나무는 낮은 키에 굽은 줄기와 이리저리 뻗은 가지가 전부다. 화강암 토양이 많아 흙이 흘러내리기 쉬운 우리나라 산 능선을 붙잡고 있는 버팀목으로서 신갈나무의 역할은 크다.
나의 직장 생활도 신갈나무 숲처럼 열악했다. 교직과정은 자주, 여러 번 바뀌었고, 이때마다 새로 개설되는 과목은 으레 내 차지였다. 학교도 실업계에서 인문계로 전환되는 과정을 겪었으며, 한 번도 구경을 못해본 컴퓨터를 익혀야 했다. 지금이야 흔하고 흔한 게 컴퓨터지만 그때는 컴퓨터학과가 있는 학교에서만 다루던 신기한 도구가 컴퓨터였다. 꼭 피아노를 구경도 못해본 학생이 음악선생이 된 기분이었다.
신갈나무에 서식하는 장수하늘소는 경기도 광릉의 임업시험장 중부지장 시험림인 소리봉(蘇利峰)에서 적지 않은 수가 채집되었으며, 강원도 명주군 청학동 소금강에서도 한 개체가 채집되기도 하였다. 특히, 광릉 소리봉의 서나무와 신갈나무숲은 우리나라의 유일한 집단서식지가 될 것이며, 이 지역의 보호는 본종의 보존과 직결된다고 하여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나는 198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문단에 나왔다. 문단에 얼굴을 내밀 때 그때는 우리 모두 천하를 얻은 것처럼 환호를 했다. 그러나 그때, 나와 같이 앞뒤로 함께 문단에 나온 시인들 중에는 지금 문예지에 얼굴이 보이지 않는 시인이 더 많다.
그래서 퇴직 후 심심풀이로 헤아려보니 중앙일간지 신춘문예를 통해 문단에 나온 시인들이 중등학교 교사로 삼십년을 근무한 이들은 손에 꼽을 정도이고, 이들 중 삼십년 동안 10권 이상의 시집을 발간한 교사는 더욱 드물었다. 정규직이 하늘에 ‘별 따기’이고 교직은 ‘하늘에 별 달아매기’ 라는 요즘, 이런 얘기는 별 웃기는 소리로 들리겠지만 처음의 그 열정을 가지고 삼십년을 지켜낸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생각보다 많은 시인들이 중도에 그 길을 멈추었고, 생각보다 많은 교사들이 처음 그 열정을 지켜내지 못했다. 처음의 열정도 중요하지만 그 열정을 평생 가져가는 일은 더욱 중요하다 하겠다.
나는 어쩜 선택받은 사람인진 몰라도 그 삼십년을 지켜냈다는 자부심에 젖는 요즘이다. 삼십년이란 한 세대를 지칭하는 말이다. 삼십년은 강산이 세 번 바뀌는 시간이다. 누구나, 누구든지, 어떤 일이든, 무슨 일을 하던 처음 그 열정을 삼십년 동안 지켜낸다면 그 끝은 심히 창대하리라.
우리나라에서는 장수하늘소 종 자체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성선경(국어교육과 졸업 동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