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칠레 출신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파블로 네루다 시인의 ‘시’를 흉내 내 이 글을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그 나이였다.....시월혁명이/나를 찾아왔다. 난 모른다.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월영지에선지 도서관 앞에서인지/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른다.’ 1979년 10월 18일 목요일 오후 2시 무렵 ‘학생시위’가 시작됐지요. 구호는 ‘독재정권 타도’ ‘유신철폐’이었습니다.
10·18은 부산지역에서도 함께 일어나 오랫동안 ‘부마사태’로 기록됐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생전에 ‘부마민주항쟁’으로 명칭을 바로잡아 마산과 경남대학교의 신원(伸寃)을 풀어주었지요. 그리고 부마민주항쟁 10주년에는 마산에 주소를 둔 (사)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가 만들어졌지요. 사업회의 꾸준한 노력이 더해져 지난해 정부의 지원을 받는 재단법인으로 승격되었습니다.
그대. 2010년 3·15의거가 41번째 국가기념일 된 데 이어, 올해 부마민주항쟁이 국무회의를 거쳐 대한민국의 51번째 법정기념일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도시 마산은 두 개의 국가기념일이라는 ‘뜨거운 역사’를 가졌습니다. 해방 이후 민중항쟁으로 기념일 된 것은 8개인데 그중 2개가 마산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우리 대학보는 ‘10·18문학상’을 제정해 우수한 문학 인재를 시상, 격려하고 있지요. 부마항쟁 당시 이 대학 대학생이었던 저는 마산의 시월이 오면 아직도 뜨거워집니다.
언제가 이 지면을 빌려 문재인 대통령께서 우리 대학 10·18광장에서 열린 부마항쟁 35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다시 여기서 출발하자.’는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말씀대로 ‘다시 시작하는 부마항쟁’입니다.
하지만 저는 왠지 씁쓸한 기분입니다. 여러 해 전 기념사업회에서 일할 때 부마항쟁에서 경찰 폭력 구타에 의해 사망한 노동자 유모 씨 추모시를 썼는데, 그 시를 국가기념일 기념 축하식에서 다시 읽어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오동동 문화광장으로 가 오랜만에 가을 양복을 입고 가 읽었습니다. 읽는 내내 부끄러웠습니다. 그 세월의 대학생이라는 말로만 부마항쟁의 일원이라는 것이.
그대. 저는 제 시 속에서 ‘마산의 시월’과 ‘나의 사랑, 나의 대학’을 많이 노래했지요. 추억은 다르게 기록되고 기억되는 모양입니다. 10월에 대해 다른 생각과 다른 목적을 가진 사람들을 볼 때마다 의구심이 듭니다. 그 마산의 그 시월이 그립습니다. 3·15와 10·18이 저를 시인으로 만들었지만, 아직 혁명은 완성되지 않은 느낌입니다.
그래서 그대. 오는 시월엔 부끄러워, 교목 ‘설송’ 아래서 ‘참회록의 시’를 쓰고 싶습니다.
시인·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