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배우지 못한 어린 ‘나’
행복을 배우지 못한 어린 ‘나’
  • 언론출판원
  • 승인 2019.09.04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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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은 편안함과 행복을 배우지 못했던 어린 시절이다. 누군가에게 자신이 태어나고 처음의 기억을 떠올려 보라고 한다면 부모님과 함께 한 행복했던 시간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누구나 한 번쯤은 천진난만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미소 지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나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 너무나 아팠던 기억만 떠오른다.

  나의 생에 첫 기억은 어머니께 머리를 맞으며 한글을 배웠던 기억이다. 아마도 정상적인  가정의 아이라면 처음 한글의 학습과 함께 부모님의 사랑을 같이 느꼈을 것이다. 나의 경우는 자음과 모음만 알려주고는 낱말 카드의 한글을 읽어보라는 어머니의 요구에 잠도 자지 못한 채 머리를 맞으며 통곡한 기억이 먼저다. 나는 아직도 그때에 잠자리에 들지 못하고 통곡하며 어머니의 모진 학대 앞에 놓여있던 낱말 카드들이 기억난다. 내가 읽지 못하여 통곡했던 카드들은 ‘호랑이’, ‘피아노’, ‘엄마’ 등이 있다. 그리고 한글을 겨우 읽을 수 있게 된 뒤에도 ‘엄마’라는 두 글자는 읽기가 싫었다. 하지만 폭력을 피하기 위해 그 두 글자 역시 읽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나는 뜨거운 여름이 반갑지 않다. 그러나 어린 시절의 나는 여름이 너무나 반가웠다. 한글을 원만하게 읽을 수 있을 때부터 덧셈을 배우기 시작했다. 어머니께서 퇴근하고 난 뒤 하루에 3시간 이상은 덧셈을 배웠다. 제대로 된 산수를 하여도 어머니는 만족하지 못하였는지 억지로 나를 붙잡고 폭력과 함께 나를 가르쳤다. 당시의 나는 새벽 두 시까지 학대를 당했다. 발목부터 엉덩이까지 본연의 색을 내지 못하였으며 한겨울에는 속옷 바람으로 현관문 밖에서 새벽 두 시가 넘어 들어오시는 아버지를 기다렸다. 여름이 반가웠던 이유는 여름이 되면 유치원 하복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내 몸 이곳저곳에 멍이 들어 하복을 입지 못하면 주변 사람들이 눈치챌까 봐 어머니는 여름에는 매를 많이 들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름의 현관문 밖은 어머니께서 계신 집 안보다 아늑했다.

  수학 문제를 어머니의 요구수준에 맞출 수 있을 때에는 영어를 배우게 됐다. 영어 학습 역시  과거의 반복이었다. 영어를 알지 못하는 나는 ‘제발 좀 죽어라.’ 혹은 ‘자살해라’라는 어머니의 폭언을 함께 들었다. 어느 날 어머니께서는 나에게 진심으로 죽으라고 말씀하셨고 나는 죽는 방법을 몰라 파워레인저의 배우들이 쓰러지는 장면을 따라 했다. 그 날은 그렇게 지나갔지만 그다음 날도 같은 상황의 반복이었다. 어느 날 어머니는 죽는 방법을 알려주시겠다며 창문으로 몸을 던지면 죽을 수 있다고 하셨다. 내가 살던 곳은 아파트 17층이었다. 나는 부엌에서 공부하다가 죽은 척을 하고 있다가 그 말을 듣고 창문으로 향했다. 첫 번째 걸음, 너무나 두려웠으나 그냥 으레 하는 말씀이겠거니 했다. 두 번째 걸음, 어머니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며 진짜 몸을 던지라 하셨다. 세 번째 걸음, 죽음에 대한 공포가 머리를 강타했다. 네 번째 걸음, 죽음보다 어머니의 학대가 두려웠다. 그리고 다섯 번째 걸음 이후로 창문으로 향하는 나의 발걸음에 어머니께서는 ‘집에 내가 있을 때 죽으면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냐! 엄마 나가 있을 테니까 그때 죽어라!’라고 하셨다. 어머니께서는 그 말씀을 하시고 현관문으로 나가셨다. 나는 창문을 바라본 채 통곡도 하지 못하며 안도와 함께 다양한 감정을 느꼈다. 그때 느낀 감정은 굉장히 복합적이었다. 집에 어머니께서 계시지 않다는 ‘안도감’과 죽음에 대한 ‘공포’, 그리고 죽음 이후의 ‘편안함에 대한 갈망’, 그리고 먹어보지 못했던 수많은 음식들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나는 30분 이상을 창문을 향한 채 서 있었다. 그 이후의 기억은 나지 않는다.

  나는 그 시절의 어머니를 원망한다. 나의 어린 시절의 기억의 거의가 어머니가 차지한다. 반바지와 반팔을 입을 수 없을 정도의 자정까지 이어지던 정신과 육체에 대한 가학, 한겨울  속옷차림으로 밖에 내쫓던 학대, 실수했을 때 커다란 식칼을 손목 위에 올리시며 실수하면 손목을 잘라버린다고 말, 그리고 죽음을 향한 네 걸음, 나는 여전히 어머니를 원망한다. 그리고 그 원망이 아직도 나를 슬프게 한다.

문동혁(행정학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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