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영지]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던 하루
[월영지]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던 하루
  • 박수희 기자
  • 승인 2019.09.04 15: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릴 때, 유난히 손꼽아 기다리던 특별한 날이 있었다. 오롯이 나만을 위한 그런 특별한 날. 바로 생일이었다. 생일은 일 년에 한 번밖에 없는 날이지만 나는 일 년에 두 번을 생일로 보냈다. 가족과는 음력 생일, 친구와는 양력 생일을 보내며 즐거워했다. 이렇게 생일을 구분 지으니 속상해하던 사람들도 줄었다. 친구들과 놀러 가야 한다고 가족에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었고, 가족들과 보낸다고 중간에 빠질 일이 없어 친구들과도 오래 놀 수 있었다.

  음력 생일과 양력 생일은 각기 다른 느낌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음력 날 아침이면 고소하게 퍼지던 찰밥과 미역국 냄새가 나를 깨웠다. 이날 아침은 정말 상다리가 부서질 정도로 많은 반찬이 상에 올라왔다. 찰밥과 미역국은 물론이고 잡채, 조기, 나물, 3색 과일, 식혜 등으로 입이 황홀했다. 아침을 먹은 뒤엔 가족끼리 영화를 보거나 나들이를 하며 시간을 보냈고 그날 저녁은 외식과 아빠가 사 온 케이크로 마무리했다.

  양력엔 음력 날과 달리 진동이 징징 울리는 휴대폰으로 하루가 시작됐다. 안면만 있는 사람들도 친한 친구들도 내 휴대폰에 축하 메시지와 선물을 보내왔다. 일일이 답장을 보낸 후엔 먼저 약속을 잡았던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집을 나섰다. 맛집을 가서 배를 채우고 카페와 노래방도 가고 원하는 선물도 고르고 하면 하루가 끝났다. 이날은 마무리 역시 축하 메시지로 끝났다.

  참 행복한 나날이었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20, 21, 22세. 일 년이 갈수록 생일에 대한 내 기분은 점점 달라졌다. 스무 살, 태어난 날 이후로 처음 양력과 음력 생일이 같았다. 나는 마음속에 계속 미안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12시가 되자마자 많은 축하를 받았고 예상치 못한 선물들에 감동했지만, 가족과 함께 못 보낸단 마음에 괜히 마음이 적적했다. 하지만 가족이 직접 대학 앞까지 찾아왔고 가족에 대한 미안함은 덜 수 있었다. 다만 친구들과의 약속이 늦어졌다는 게 문제였지만 말이다.

  그다음 해부터는 다시 음력, 양력 다른 날이 되었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음력 생일은 여전히 행복했고 선물은 없어졌지만 아침 생일상에 난 사랑받고 있다는 생각에 든든해졌다. 하지만 양력 생일은 축하를 받고 사람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면서도 마음이 허했다. 즐겁다가도 기분이 착 가라앉았다.

  한 번 이유를 추측해보자면 아마 이 사람들이 언제까지 친하게 지낼까 하는 그런 생각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어릴 땐 받는 게 없어도 기분 좋게 줬지만, 지금은 받는 게 있어야 나도 주고 내가 주면 그쪽에서 당연히 주는 게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더는 축하받기만 할 날이 아니었다. 내가 이만큼 받았으니 저 사람들 생일은 어떻게 챙겨줘야 하나 고민해야 하고 저 사람들과 언제까지 갈지 계산적으로 구는 날이었다.

  올해 음력 생일은 여전히 행복했다. 음력과 양력 차이에 내가 내린 답은 위와 같다. 그래서 욕심과 걱정을 내려놓아 보기로 했다. 생일을 행복하던 예전으로 되돌리기 위해서 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경남대학로 7 (경남대학교)
  • 대표전화 : (055)249-2929, 249-2945
  • 팩스 : 0505-999-2115
  • 청소년보호책임자 : 정은상
  • 명칭 : 경남대학보사
  • 제호 : 경남대학보
  • 발행일 : 1957-03-20
  • 발행인 : 박재규
  • 편집인 : 박재규
  • 경남대학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2024 경남대학보. All rights reserved.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