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은 올해 우리나라와 일본의 관계는 해방 이후 최악의 상황을 겪고 있다. 일본 정부는 반도체 관련 3개 품목의 한국 수출을 규제하고 한국을 백색국가 명단에서 제외하였다. 이는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에 대한 일본의 보복이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와 지자체도 여러 정치적, 경제적 대응 방안들을 검토 시행하고 있으며 민간에서도 “보이콧 재팬”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일본에서도 각종 혐한 시위, 집회 및 가짜뉴스 등이 확산되고 있다. 양측의 실질적 소통이 끊김에 따라 사태가 장기화하고 양국의 경제적 피해 또한 커질 전망이다.
우리는 한일 갈등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이를 지난 세기 일제의 강점에 맞선 민족주의적 반식민주의 운동의 틀로만 이해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우리는 더 이상 식민지가 아니며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한일 갈등이 8.15 광복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해소 못한 역사적 문제들의 귀환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지난 세기의 항일운동은 민족주의 운동이었을 뿐 아니라 일본 군국주의에 대항하는 평화운동이었고, 국민주권과 인권존중의 민주공화국 수립 운동이었으며, 일본 자본과 친일 지주계급의 착취로부터의 해방운동이었다. 하지만 민족의 해방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천황제와 군국주의 지배세력은 온존하였고, 조선의 강제동원 및 성노예 피해자는 적절한 배상을 받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친일파 청산이 좌절되고, 불공정한 한일협정이 체결되었으며, 경제 양극화와 일본 경제에 대한 의존은 토지개혁과 경제발전에도 불구하고 다시 심화되었다.
현재의 한일 갈등은 인권·평등·평화의 민주적 가치와 전쟁·이윤·국제법 논리 간의 대결이다. 일본의 아베 정권은 안보적 우려와 국제법 위반 등을 거론하면서 재무장과 무역규제를 통해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협하고 있다. 또한 한국에 전쟁 피해자의 인권을 무시하고 사법부 독립의 민주주의 원칙을 훼손하라 요구하고 있다. 우리에게도 풀어야 할 과제가 있다. 한국도 그동안 강제동원 및 성노예 피해자 문제 해결에 소극적이었으며, 최근에는 이윤 논리를 위해 각종 노동 관련 규제 완화까지 거론되고 있다. 이에 맞서 우리는 한일 양국의 지나친 민족주의 발흥을 경계하고, 전쟁·이윤·법의 논리를 지양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민족 간 대결을 조장하지 않고, 약자를 희생시키지 않으며, 일본의 시민사회를 포함한 세계와의 연대를 통해 일본의 아베 정권에 맞서야 할 것이다. 21세기의 항일 운동은 인권·평등·평화를 지향하는 민주적 방식을 따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