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무엇이든 하는 게 좋았다. 가만히 빈둥빈둥대는 것보다 움직이고 싶었다. 특히 손에 카메라만 쥐여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돌아다녔다.
카메라를 좋아하던 아이는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갔다. 집 앞 구청에서 열리는 편집 강의를 시작으로 학창 시절 방송반, 대학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지금의 경남대학보사까지 행보는 거침없었다. 어쩌면 그동안 치열하게 달려온 내 삶의 증거이자 흔적들일 수 있다.
작년 3월은 꽃길의 연속이었다. 간절히 바라던 학과에 발을 디뎠으며 학보사에 당당한 기자가 되었다. 아직도 첫발을 내린 기자실은 머릿속에 선명하다. ‘끼이익’ 하는 철문의 낡은 소리와 함께 회색빛으로 가득한 펼쳐진 신문들과 퀴퀴한 잉크 냄새까지 잊을 수 없다.
수습기자로서 첫 출근을 했던 날, 첫 과제는 나를 알아보기였다. 당황했다. 출근하기 전 혼자 ‘첫날 뭐할까?’라고 상상한 것과 달리 너무나 단출했다. 그러나 이는 훗날 문화부로 향하는 중요 한 관문이었다. 유독 사진에 관심이 많았기에 여행, 행사 등 생기 있는 사진이 담긴 기사에 눈길이 갔다. 학보 속 화려한 빛으로 가득한 진주 유등축제가 대표적인 예다. 되돌아보면 이날부터 ‘나도 예쁜 사진이 담긴 기사를 써봐야지’라는 소망이 생겼다.
그날부터 하루하루 수습 노트를 써 나갔다. 기자실로 매일 배달되는 신문 기사 중 하나를 선택해 노트에 붙였고, 한쪽에는 내 맘대로 기사를 고쳐나갔다. 같은 뜻이 담긴 단어를 바꿔 써보고 서론과 본론, 결론까지 뒤죽박죽 섞어도 보았다. 그러던 중 학보사 국장님이 급히 나를 찾았다. 수습기자 중 처음으로 학보에 사진과 글을 써볼 기회를 주었다. 1면 하단에 있는 포토포커스였다.
국장님께 취재 내용을 듣곤 서둘러 카메라를 챙겨 나갔다. 주차권 무인 발급가 도입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직접 찍은 사진이 학보에 실릴 생각을 하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사진 촬영을 마치고 기자실로 돌아와 글을 써 내려갔다. 기자는 최대한 많은 정보를 담고 싶었다. 하지만 분량은 두 문장으로 제한되어 아쉬웠다. 두 문장을 완성하기 위해 공책에 열 개의 문장이 넘도록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며칠 후 학보가 발간됐다. 곧바로 부모님께 1면의 학보를 손가락으로 짚으며 첫 기사를 자랑했다.
18개월을 학생 기자로 생활하며 언제나 함께했던 친구가 있다. 수습기자 시절 구매한 노트북이다. 바탕화면 속 ‘학보사’라는 폴더 속에는 새하얀 벚꽃부터 다채로운 축제와 행사 사진들로 가득하다. 그동안 발로 뛰어다니며 취재했던 소중한 추억들이다. 기자는 이번 학보를 끝으로 또 다른 세상으로 떠나야 한다. ‘학생 기자’라는 수식어는 내게 평생 잊지 못할 값진 경험이었다. 짧고도 긴 여행을 보내준 경남대학보사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사함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