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본명 강윤희) 감독은 1908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봉곡리에서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고향에서 사립 경행학교를 마치고 13세에 일본으로 건너가 고학으로 교토중학교와 교토회화전문학교를 졸업했다.
귀국 후 조선영화예술협회 연구생으로 들어가 영화 연출을 배웠다. 1927년 카프에 가입해 미술부와 영화부에서 활동하며 프롤레타리아트 예술운동을 활발하게 펼쳤다. 이 시기 그는 순수회화보다는 실효성 있는 예술창작을 위한 무대 미술에 관심을 갖고 <자라 사신>, <소병정>과 같은 동화극에서 솜씨를 발휘하기도 했다.
1928년 고향에 내려와 영화사 ‘남향키네마’를 설립하고 경남 지역 최초의 영화인 <암로>를 만들었고, 1930년에는 카프 영화부 ‘청복키노’에 있으면서 도시노동자들의 애환과 투쟁을 그린 영화 <지하촌>을 만들었다.
1932년 카프 극단 ‘신건설’에 참여했고, 카프 동경지부 기관지인 『우리 동무』 배포 사건으로 피검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3년간 옥고를 치렀다. 출소 후 부산에서 간판화공일을 하고 1937년 무대미술가 김일영과 함께 광고미술사를 창립했으나 다시 공산주의협회자사건으로 체포되어 대구형무소에서 4년을 복역했다.
해방 후 서울에서 조선프롤레타리아연극동맹을 결성하고 서기장으로 활동하며 연극 <3.1운동>, <폭풍우>, <불길> 등의 무대미술을 맡았다. 1946년 월북했으며 이후 북한에서 국립영화촬영소의 연출가와 무대미술가로 활약하였고, 평양미술대학에서 영화와 무대미술을 강의했다. 북한에서 쓴 책으로 『나운규와 그의 예술』, 『무대미술의 기초』, 『해방 전 우리나라 살림집과 생활양식』, 『해방 전 우리나라 옷양식』 등이 있다.
경남 지역 최초의 영화, <암로(暗路)>
강호 감독은 1927년 조선영화예술협회 연구생으로 들어가서 영화에 입문했다. 김유영, 임화 등과 함께 연구생으로 수학하며 영화 이론 및 분장, 연기 등을 배웠다. 이때 그의 영화 문법을 형성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이는 <아리랑>의 감독 나운규다. 네 차례에 걸친 나운규의 강의를 통해 영화용어와 연출기법들을 익혔다.
<암로>는 경남 지역에서 만들어진 최초의 영화다. 1928년 강호 감독이 고향으로 내려와 영화사 ‘남향키네마’를 설립하고 독고성이란 예명으로 처음 제작한 작품인데 연출과 각본, 배우를 도맡았다. 촬영과 편집에는 민우양, 배우로는 강호를 비롯해 강장희, 박경옥, 이명래, 차남곤 등이 출연했다. 1929년 1월 26일 단성사의 영화대회 출품작으로 개봉되었다.
고향 봉곡리의 들녘을 배경으로 만든 <암로>는 장기간의 농업 공항으로 황폐된 1920년대의 조선 농촌과 농민의 실상을 그린 무성 영화다. 당시 동아일보 기사에는 1928년 5월 21일부터 촬영에 착수하여 2주일에 걸쳐 촬영이 완료되었다고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필름도 스틸 컷도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단성사의 변사였던 김서정이 작사 작곡하고, 당대 최고의 인기배우이자 가수였던 김연실이 무대에서 직접 부른 <암로>의 주제가는 오랫동안 큰 인기를 얻었다. 1930년 빅터레코드에서 음반으로 만들어졌고 이후에도 강석연, 이진홍, 고복수에 의해 리바이벌되었다.
카프 영화의 전형, <지하촌(地下村)>
강호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인 <지하촌>은 1930년 카프영화부 직속으로 설립된 ‘청복키노’에서 제작되었다. 촬영은 민우양이 맡고 김정숙, 임화, 강호, 이학래, 이정애, 신영 등이 출연하였다.
<지하촌>은 카프 영화의 전형적인 작품으로 일제와 결탁한 악덕 자본가를 고발하고 노동자들의 조직과 파업 과정을 보여주는 계급주의 영화다. 시나리오의 원제는 ‘늘어가는 무리’였는데 강호와 안석영 등이 함께 쓴 집체작이다. 함남 철공장의 자본가인 김기택이 일본군부의 후원을 받아 빈민촌을 철거하려 하자 함남 철공장 노동자 임철근이 빈민촌 사람들을 조직하고 교육하여 노동자들과 함께 적극적으로 투쟁에 나서는 것을 기본내용으로 하고 있다.
<지하촌>의 촬영은 1930년 겨울에 이루어졌다. 4,000m의 네거필름과 빌린 낡은 촬영기 한 대뿐 제작비용이 없어 식사조차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어려움과 영하 30도의 혹한을 견디며 촬영이 진행되었으나 일제의 지속적인 탄압과 검열로 <지하촌>은 끝내 개봉되지 못했다.
1931년 일제는 이 영화를 빌미로 삼아 카프 맹원들에 대한 대대적 검거에 나서는데 이것이 제1차 카프검거사건이다. <지하촌>의 필름은 압수당해 사라졌고, 주인공 임화의 얼굴이 담긴 스틸 컷 한 장만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