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 아고라] 코드와 주파수
[한마 아고라] 코드와 주파수
  • 언론출판원
  • 승인 2019.06.07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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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대학생활 중, 썸을 타던 여사친이 있었다. “네랑은 코드가 안 맞아서 대화가 안 돼.” 그녀로부터 그 말을 들은 것은 88년 1월쯤이었다. 그녀가 코드라고 하는 게 무엇일까?

  영어교육과를 다녔던 그녀는 자신이 총여학생회장에 출마하겠다고 학보사 취재부장이던 내게 동의를 구하러 왔던 것이다. 그러나 내가 판단하기에, 그녀는 운동권 경력이 전무하고, 결집력이 높은 문리대나 공대가 아니었기에 선거에서 이길 확률이 매우 희박했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시간 쓰고, 돈만 날리니 선거에 출마하지 마라”고 잘라 말했다. 어쩌면 나는 학보사 기자로서, 선거 중립 의무로 그녀의 선거운동을 도와줄 수 없었기에 단 한 마디로 안 된다고 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약간의 썸을 타던 그녀에게 코드가 안 맞는다는 이유로 차이고 말았다. 나는 주파수를 맞추지 못해 그녀의 이야기를 정확하게 듣지 못했던 것이다.

  코드와 주파수 맞추기는 서로가 높낮이를 조절하며 맞추는 것이 아니다. 코드와 주파수는 오로지 내가 상대에게 맞추어야만 상대와 레벨이 같아져서 그쪽에서 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조선소에서 오랜 기간 동안 현장 노동자로 일했다. 조선소에서는 배 만드는 일을 ‘배를 모은다’라고 표현한다. 배란 것이 철판이나 철 구조물은 물론이거니와 배를 운항하기 위한 수많은 장비, 그 배의 목적에 맞는 여러 가지 기계와 부품들. 그리고 배를 만드는 기술자, 건조한 선박을 운항하는 선장까지 모든 것을 모아야만 한 척의 선박이 완성되는 것이다. 특히 현대의 모든 기술들이 종합적으로 집약된 조선업은 수많은 기술자들이 마음을 맞추지 못한다면 결코 배를 건조할 수 없게 된다. 배를 건조한 이후에도 많은 것들을 모아 그 배의 목적에 따라 코드와 주파수를 잘 맞추어야만 바다로 나가서 오대양 육대주를 힘차게 운항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조선소를 옮겨 다니며 낯선 사람들과 객지를 떠도는 동안 내 뒤를 따라, 두 딸도 경남대 13학번 15학번이 되었다. 현재 큰딸은 대전에서 공부를 하고 있고, 작은딸은 1년 휴학한 후 4학년에 재학 중이다. 함께 살고 있는 작은 딸과 때때로 세대 차이를 느끼긴 하지만 우리는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다정한 부녀 사이다. 조선소를 다니며 몸에 익힌 습관으로 내가 딸에게 최대한 모든 것을 맞추려 애쓰다 보니 말이 통하는 사이가 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께서 취임 이후, 전임 대통령과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게 바로 만나는 상대에게 눈높이를 맞추어 주는 것이다. 어린아이를 만날 때는 아예 무릎을 꿇고 허리까지 깊숙이 숙여 아이의 눈높이에서 인사를 한다. 눈높이 맞추기 인사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에게도, 청와대로 오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적용하는 것을 보았다. 그 모습은 문 대통령의 오래된 습관처럼 보였다. 어쩌면 대통령 당선의 가장 큰 힘이 눈높이 만남이 아니었을까 싶다. 상대방에게 코드를 맞추어 주면 상대방은 ‘이 사람은 나와 통하는 사람이다.’라고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작금의 한국 사회는 코드와 주파수를 맞추지 못해 갈등의 연속이다. 좌와 우, 진보와 보수 등, 이분법의 대결 속에 매몰되어 사회 발전의 큰 저해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눈높이 코드를 상대에게 맞추고 내가 상대의 주파수에 맞춰 그들이 내는 소리를 정확하게 들어야 할 시기이다. 그렇게 해야만 이 시대에 만연한 이분법적 논리에 의해 생기는 사회적 손실을 서서히 줄여나갈 수 있으리라.

  작년 고인이 된 지역의 여류시인 박서영 선생은 새벽 세 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시의 주파수를 맞추어 시를 만났다고 한다. 그러면 시가 박 시인에게 접신을 해서 한 줄 한 줄 시가 완성됐다고 한다. 박서영 시인의 시 ‘돌의 주파수’ 일부를 발췌해 본다.

  새벽 세 시 내 몸은 가장 둥글게 구부러진다/밖으로 터져 나가지 못한 채 안으로 깊이 떨어지는 숨/점점 반죽 덩어리가 되어가는 몸/나는 어느 날 구(球)가 되어/가장 고독한 주파수 하나 몸 안에 가지게 될 것이다.                                                    -박서영 시집 [좋은 구름]에서-

고규석(86학번, 경남대학보사 29기,현재 계간진해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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