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근의 발밤발밤] 벚꽃이 주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으니
[정일근의 발밤발밤] 벚꽃이 주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으니
  • 언론출판원
  • 승인 2019.04.15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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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이 진다. 청록파 지훈 시인은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라고 ‘낙화’라는 시의 처음을 적었다. 벚꽃이 피기를 열망했지만,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벌써 꽃이 지고 없다. 열망의 열기가 식지 않았는데 꽃은 왜 꽃가지를 떠나는 것인가. 꽃이 필 때는 가진 것 없어도 주머니가 그득그득 찬 것 같았는데, 꽃이 지니 마음이 흘러가는 흰 구름인 양 아득하고 정처 없다.

  나는 벚꽃의 도시에서 태어나 나무와 같이 자랐다. 벚꽃나무는 언제나 내 가까이에서 천천히 혹은 빠르게 변화하는 사계(四季)를 제 몸으로 보여주었다. 나는 나무와 나란히 서서 꽃을 맞이하고, 꽃을 떠나보냈다. 내가 가진 감성은 벚꽃을 통해 배운 것이다. 그 감성에서 시가 나왔으니, 나의 시는 고향 진해에 뿌리를 내린 식물성이다. 두 눈은 침침해진 지 오래지만 습관인 듯 꽃이 피는 쪽으로 저절로 귀가 열린다.

  나는 피는 벚꽃에 열광했고, 지는 벚꽃에 눈물을 훔쳤다. 피는 꽃에서는 기다림의 자세를 배웠고, 지는 꽃에게서는 작별의 미학을 배웠다. 그것은 시가 되고 노래가 되고 사랑이 되었다. 그때 나는 벚꽃나무에 등 기대거나 이마를 대고 얼마나 많은 주술을 걸었던가. 그리고 벚꽃이 들려주는 많은 이야기를 경청했다. 나무는 나에게 친구였고 스승이었다. 돌아보면 벚꽃과 참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러는 사이 내가 즐기는 ‘벚꽃삼락’(三樂)이 생겼다. 그 첫째는 ‘꽃을 기다리는 즐거움’이다. 겨울을 견딘 가지에 꽃이 필 때를 기다리는 즐거움은 크다. 벚꽃이 어디 한 송이만 피는 풀꽃이 아니지 않은가. 나무가 온몸에 동시에 꽃을 다는 모습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서 한순간에 날아오르는 하양나비 떼를 보는 것과 같다.

  그 두 번째는 ‘벚꽃이 만개했을 때의 풍성함’이다. 나무가 분홍 솜사탕을 든 것 같고 나무에 개구리 알이 오그랑오그랑 모여 있는 것 같다. 바람이 솜사탕을 베어물고 달아나고 개구리 알에서 송사리 떼가 헤엄쳐 나오는 상상의 즐거움이 꽃의 만개에 있다. 무엇을 상상하든 상상한 것 이상의 즐거움이 찾아온다.

  그 세 번째가 ‘분분한 낙화의 즐거움’이다. 눈이 귀한 고향에서 나는 벚꽃의 낙화를 ‘4월의 폭설’이라 이름하며 그 아래 눈사람인양 서 있곤 했다. 국경을 넘어 먼 북쪽 설원으로 떠나는 겨울 나그네가 되어 눈을 맞았다. ‘닥터지바고’가 되었다가 ‘시인 이용악’이 되었다가…. 꽃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며 손금 같은 운명 밖으로 걸어 나갔다.

  하지만. 이 ‘삼락’은 새잎이 벚꽃을 지우며 조그만 연초록 손을 내밀 무렵 사라진다. 그렇다고 섭섭한 일은 아니다. 벚꽃은 이어 찾아올 잎과 열매를 위해 망각이듯 깨끗하게 잊힌다. 4월은 벚꽃으로 불처럼 뜨거웠다 낙화로 얼음처럼 차가워진다. 벚꽃나무는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어떤 생을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었다. 나무의 가르침은 지금도 유효한 우정이다. 그래서 벚꽃나무는 나의 오랜 친구다.

시인·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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