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 아고라] 오면잠(五眠蠶)
[한마 아고라] 오면잠(五眠蠶)
  • 언론출판원
  • 승인 2019.02.20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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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면잠(五眠蠶)이라고 있다. 알에서 깨어나 뽕잎을 먹고 잠자며 허물을 벗고 크는 누에는 다섯 잠을 자면 고치를 지을 자리를 잡는다. 넉넉히 먹었으니 비단실을 뿜어내며 스스로를 가두고는 번데기가 된다. 이 번데기는 우화(羽化)하여 나방이 되고, 고치를 뚫고 나와 알을 낳으면 알이 또 누에가 되는 한 살이를 되풀이 한다. 우리가 필요해서 챙기는 비단은 (나방이 되지 않도록) 고치를 삶아 번데기를 죽이고 뽑아낸 실이다. 누가 아호(雅號)가 있느냐고 해서 고민타가 五眠蠶으로 할까보다 생각했다. ‘다섯 잠 잔 누에’ - 스스로를 가두고 비단실을 뿜어내는 누에 말이다.

  일찍이 기획실의 부처장으로 3년이나 일을 본 적이 있었다. 열정으로 일했다. 86년에 ᄒᆞᆫ글이 나왔을 무렵, 남 먼저 사서 익혔고 지금의 엑셀인 로터스 1-2-3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자료처리를 가르쳤기에 방학 때 전 직원들에게 ᄒᆞᆫ글워드와 로터스를 배우게 했다. 사무실에 타이피스트가 있었던 시절이니 반발이 심했지만 밀어붙였다. 조만간 각자 컴퓨터로 일하지 않으면 안 될 거라고! 학교에 PC룸을 확장했고 도서관의 책에는 바코드를 붙이고 도난방지 태그를 달고 정보화 했다. 외부에서 인쇄하는 발간물이 아까워 출판부를 만들었다. 전자출판시스템을 구비했다. 논문은 원고지 대신에 워드를 쳐서 디스켓으로 제출케 했다. 그리고 땅을 파고 벽을 뚫어 랜(LAN) 케이블을 연결했다. 종이 말고 이메일을 주고받자는 것이었다. 90년대 초반이니 정말 혁신을 밀어붙였다. 한강 이남에서 앞서 나간다고 견학을 오는 이웃 학교가 많았다.

  2000년대 들면서 디지털이 화두고 전자상거래가 뜨고 있었다. HTML과 쇼핑몰을 공부했던 나는 전자상거래 전공을 만들었고 e-비즈니스학부를 탄생시킨다. 사서 고생을 했다. 지금은 자료와 정보, 서적이 넘쳐나지만 당시에 커리큘럼을 짜고 강의를 하려면 정말 힘들었다. 적절한 교재가 없어 번역을 해가며 썼는데 가시밭길을 헤친 기분이다. 그로부터 약 20년이 지났다. 그간의 변화가 상전벽해라면 향후 20년은 천지개벽일 것이다. 인공지능과 딥러닝,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시대를 맞아 교육에도 혁변이 온다.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의 각오로 준비하고 나서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는다. 오히려 기회가 있다. 스타 교수, 스타 학과가 가능하다.

  잘못 만난 이웃 때문에 안할 고생을 한 적도 있다. 경남국립대학교를 하겠다고 나선, 어이없는 시비에 교명을 지키느라 대법원까지 재판을 다닌 것이 거의 4년이다. 2009년에 기획처장을 맞고 생긴 일이다. 언론에 인터뷰를 하고 학교 측의 입장을 밝히다 보니 카메라가 낯설지 않다. 그간의 대응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결재서류, 보도 자료와 판결문 등을 모아 교명수호백서를 발간했다. 그러다보니 특허권과 상표권 등 지식재산에 반풍수가 되었다.
아는 한 사람이 큰 건물을 가지고 있다. 요즘 초등학생들의 꿈이기도 한 그 건물주는 빚을 좀 내서 샀는데 세가 잘 안 나가는 모양이다. 딴 데서 벌어 이자 갚기에 버겁다는 소문이 있다. 무리를 한 것 같다. 당장 불편하니 큰 구두나 큰 모자, 큰 옷을 입고 다닐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과분한 일과 자리에 욕심을 내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나는 작은 그릇인 줄을 알기에 그릇에 어울리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니 참 편하고 넉넉하다. 앞으로 비우고 내려놓으려 하니 작은 고치(?)라도 하나 만들어 볼까 싶다. 먹은 뽕잎이 얼마이던가?

  헤아려보니 32세에 교수가 되었고, 33년을 봉직했다. 34년을 더 살 수 있다면 무얼 어떻게 할까? (숫자가 연속되어 써 본 것임.) 정년이나 퇴직이라는 말이 정학이나 퇴학과 연상되어 곱진 않다. 월영캠퍼스가 74년에 문을 열었다. 73학번인 나는 군복무와 대학원을 빼면 이 월영언덕을 뻔질나게 오르내렸다. 나와 가족이 먹고 산 직장이기에 무얼로 고마움을 다 표할지 모르겠다. 훌륭한 총장님과 여러분들이 학교를 발전시켜 주시리라 믿는다. 잘 될 것이다. 원로 석학의 말대로라면 인생의 황금기를 맞은 내가 새로 할 일은 더 공부하여 이 세상에서 먹고 입고 받은 혜택을 되갚고 가는 것이다. 공수거(空手去) 아니던가?

조기조(대학원장, 경영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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