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모두 다 받아주기 때문’에 바다라고들 합니다. 불어에는 바다와 어머니를 같은 말로 사용합니다. 바다는 모성이 강합니다. 특히 우리나라 바다는 더욱 그러합니다. 저는 어릴 적 벚꽃이 피는 고향 바다에서 위안을 받았고, 대학 시절 바다를 보며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삶에 지칠 때 바다는 ‘남자가 울기 좋은 장소’입니다.
저는 바다가 그리울 때 거제 바다를 찾아갑니다. 거제로 가는 새로운 관문인 ‘거가대교’가 놓인 이후 거제는 가까운 섬입니다. 거제에 가면 반드시 하룻밤을 머무는 곳이 ‘학동흑진주몽돌해변’입니다.
거제는 몽돌해변이 많습니다. 거가대교를 건너면 만나는 ‘농소몽돌해변’을 시작으로 ‘망치몽돌해변’ ‘여차몽동해변’ 등 즐비합니다. 몽돌도 다양한 크기와 표정, 색깔들이 다 다릅니다. 제가 꼭 학동에서 하룻밤을 자는 것은 대학 시절 그곳에서 제 데뷔작을 썼기 때문입니다. 그땐 학동은 저에게 다산 유배지인 강진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몽돌의 파도 소리와 모래사장의 파도 소리는 다릅니다. 몽돌해변에서는 파도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파도가 몽돌을 몰고 오고 몰고 갑니다. 둥근 몽돌이 서로를 껴 앉고 왔다 돌아가는 고통의 소리를 저는 대학 시절 ‘열 손톱이 다 젖어 흐느끼고 어둠의 끝을 헤치다 열 손톱마저 다 닳아’진다고 표현했습니다.
그 느낌은 지금 또한 마찬가집니다. 학동해변의 일박은 ‘열 손톱 열 발톱 밑으로 피멍이 드는’ 아픔입니다. 파도가 낭만이 아니라 고통일 때 그 소리에 묻어 가슴에 담겨져 있는 답답함을 포효하듯 외칩니다. 한참을 가슴 속을 비워내면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고 정신이 맑아집니다.
일출 시간이 찾아오면 그땐 바다는 희망과 새로운 각오를 줍니다. 그게 바다의 선물입니다. 위안과 희망. 그것을 선물 받기 위해 저는 바다로 갑니다. 아침이 되면 거제 14번 국도를 따라 가다 1018번 지방도로 이어지는 여차(汝次), 홍포(虹浦)를 찾아갑니다. 여차, 홍포는 거제 바다가 숨겨 놓은 비경입니다.
여차몽돌해변은 학동과는 달리 조용하며 지중해 분위기가 납니다. 마을과 해변의 높이 차이가 그러합니다. 내려가 보면 작은 항이 있고, 긴 몽돌 해변은 두 개로 나눠져 있습니다. 성수기가 아니면 늘 한적한 바다입니다. 몽돌해변에 자리를 깔고 담요 한 장으로 밤을 지낼 수 있습니다.
그곳은 사람과 바다와 몽돌,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이 하나가 됩니다. 저는 귀만 열고 그것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여차에서 홍포로 넘어 언덕길에 여차·홍포전망대가 있습니다. 사람이 산다면 군도라 부르고 싶은 대·소병대도가 모인 듯 흩어진 듯 떠 있습니다.
홍포는 일몰을 보는 해변입니다. 놀 속에서 섬들을 보면 마치 눈물 같습니다. 붉은 눈물입니다. 학동, 여차, 홍포로 이어지는 바다가 제 ‘시그니처 바다’입니다. 여럿이 보다는 혼자가기 좋은 바다입니다. 3색의 바다입니다. 외롭고 힘든 분께 권하는 바다입니다.
그 바다에서 그대와 우연히 만난다면 깊은 맛의 뜨거운 커피 한 잔을 나누고 싶습니다.
시인(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