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회 10·18문학상 현상 공모 - 수필 '문'
제32회 10·18문학상 현상 공모 - 수필 '문'
  • 박수희 기자
  • 승인 2019.01.02 11: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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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부문 당선: 성유진(음악교육과·4)

 

  첫 문이 열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열 세 살이었다. 온통 새빨개진 침대와 피로 축축한 속옷과 마주했다. 가임기 여성이라기에는 너무 어린 아이였다. 죽을병에 걸렸다고 생각했다. 당장의 빨간 피가 무서워 눈물을 뚝뚝 흘렸다. 초등학생이 열기엔 무거운 문이었다.

  어떤 집에서는 축하 파티를 연다고 했다. 우리 집은 아니었다. 오히려 엄마의 얼굴은 울기 직전이었다. 눈동자가 울렁였다. 나는 어렸다. 그 표정의 의미를 알 수 없었다.

  엄마는 고통으로 동그랗게 허리를 만 나에게 따뜻한 매실차를 쥐어주었다. 청록색의 차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아직 섞이지 않은 꿀이 동동 떠다닌다. 원액은 시큼하니 엄마는 꿀을 조금 넣었다. 달보드레하고 부드럽다. 꿀이 섞인 매실을 목으로 넘기면 배 끝까지 따뜻해진다. 고통을 가만히 쓰다듬는다. 잠시나마 그것들을 잠재운다. 그제야 눈을 붙인다. 엄마는 문 틈 사이로 잠든 날 보고 다시 주방으로 향한다.

  엄마는 항상 달력에 그날을 표시했다. 나도 엄마를 따라했다. 엄마와 나의 동그라미는 겹쳤다. 그날마다 우리는 함께 소파에 앉아 배를 움켜쥐었다. 같은 진통제를 먹으며 고통이 가라앉길 기다렸다. 아빠는 그럴 때마다 엄살이라는 듯 핀잔을 주는 눈치다. 분명 아빠는 알지 못하는 고통이었다. 세상 어떤 아빠도 알 수 없다. 순전히 우리만 공유하는 날들이었다.

  해질녘 즈음 엄마는 비실비실 일어났다. “하루라도 설거지를 안 하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 얼굴은 여전히 하얗게 질려있었다. 저녁밥을 지어야했고 반찬도 볶아야했다. 좁은 부엌에서 엄마의 발자국이 수백 개 찍힌다. 유난히 허리를 두들기는 것 빼고는 내색하지 않았다.

  나는 소파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내 고통이 더욱 진해 보였다. 엄마는 분명 나만큼 아팠다. 어쩌면 더 아팠을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엄마는 누울 수 없었다. 엄마만의 숙제가 있었다.

  그날 저녁은 보글보글 끓는 김치찌개와 통통한 고등어가 올랐다. 엄마는 식사가 끝나기도 전에 후식을 준비했다. 엄마는 잘 익은 사과를 깎기 시작했다. 칼을 잡은 엄마의 손이 그날따라 고달파 보였다. 저녁밥부터 후식까지, 엄마는 단 한 순간도 휴식을 취하지 못했다. 칼을 건네 달라고 말하자 엄마는 고개를 젓는다. 외동딸인 나에게 엄마는 한 번도 칼을 잡게 하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나는 엄마가 되어서도 사과를 깎지 못한다. 엄마는 할머니가 되어서도 나에게 사과를 깎아 준다. 몇 십 년이 지나도 예쁘게 깎은 사과는 모두 자식들의 차지가 되고, 엄마는 온전하지 못한 사과 몇 조각만 우물거릴 것이다.

  무언가 허전하다. 소파에 웅크린 사람이 나뿐이다. 그날마다 불룩했던 우리 집 휴지통이 어느 날부터 조금 비어있다. 무신경한 딸은 언제부터 엄마의 문이 서서히 닫혀 갔는지 알지 못한다. 나의 첫 문이 열린 기억은 엄마와 함께였다. 하지만 엄마의 문이 닫히는 건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 엄마는 어느 정도의 길을 지났을까.

  엄마는 날카로웠다. 내가 끓인 라면이 제대로 익지 않아서, 아빠가 설거지를 해 놓지 않아서, 비가 와서 역정을 냈다. 장난스런 농담도 예민하게 받아들였다. 때로는 화를 주체하지 못해 흐느꼈다. 그럴 때면 아빠와 나는 눈치를 살폈다. ‘또 시작이네.’ 아빠는 안 방으로, 나는 내 방으로 도망쳤다.

  얼마나 지났을까. 거실이 잠잠하다. 문틈으로 바깥을 조심스레 살피니, 선풍기 앞에서 꼼짝 하지 않는 엄마가 보인다. 엄마는 눈을 감고 있다. 방금 달리기를 한 것처럼 달아오른 얼굴에는 식은땀이 흐른다. 선풍기는 쉴 새 없이 엄마 머리에 바람을 분다. 망가진 엄마의 머리가 우스꽝스럽다. 나는 조용히 엄마 곁으로 다가가 단정히 머리를 정리해 준다. “엄마는 오춘기를 겪나보다.” 그 말에 엄마는 가만히 웃는다.

  어느 날부터 엄마는 매실차 대신 칡즙을 마신다. 그 나이 대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제품이란다. 칡즙을 마시는 엄마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진다. 몇 백 개의 칡즙이 닫히는 문을 겨우 버틴다.

  젊을 때 하나라도 챙겨 먹으라는 권유에 나는 한 모금 마셔본다. 이내 혀를 웩 내민다. 쓴 맛은 꽤 오랫동안 입 안에 남는다. 역하기도 하다. 엄마는 하루에 몇 번이나 칡즙을 먹는다. 문이 닫히는 게 두려운 모양이다. 닫혀가는 문을 어떻게든 막아 보려한다.

  엄마의 생체 시계는 계속해서 흐른다. 폐경이 진행되며 난소는 작아지고 늙어간다. 난소의 내부는 할머니의 이마 같다. 주름이 자글자글하다. 그곳에선 더 이상 생명을 품지 못한다. 언제나 올려다보았던 엄마의 모습은 어느샌가 정수리가 보일 만큼 작아졌다. 자세히 보니 흰머리가 희끗하다. 사람으로서 당연히 겪는 과정이다. 하지만 엄마는 이 모든 걸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낡은 문은 서서히 닫힌다. 이유는 거창하지 않다. 무심히 지난달의 달력을 뜯어내는 것처럼, 언젠가 닫힐 문이다. 엄마는 문 앞에 주저앉는다.

  열이 올라 한참을 설쳤던 긴 밤, 끝없이 오르내리는 기분, 엄마는 고통스러워했다. 무어라 말을 건네고 싶지만, 목이 울컥거린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는 그 감정을 감히 헤아릴 수 없다.

  대신 좌절하는 엄마의 손을 꼭 잡아주고 싶다. 어깨를 끌어안고 그동안 수고했다며 토닥여 주고 싶다. 이제는 가족에게 헌신하는 삶이 아닌, 엄마가 좋아하는 바늘과 실로 남은 시간을 꿰어갔으면 한다. 오롯이 엄마의 삶을 살았으면 한다.

  엄마의 문은 닫혀간다. 비로소 완성되어간다.

 

10·18문학상 수필 심사평

  2018년 10·18문학상 수필부문 응모작은 풍성했다. 응모편수도 지난해 비해서 늘어났지만 문학적 수준도 기대이상으로 높았다. 정말이지 요즘 대학생들이 이렇게도 성숙한 삶을 살고,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가지고 있는가 싶어 깜짝 놀랐다.
  보내온 작품들은 대학생활의 적응과정, 사랑의 아픔과 승화, 부조리한 사회현실, 세대 간의 통과의례, 참된 여행의 의미, 가족 간의 우애 등 그 내용도 다양하고 사유의 깊이도 합리적이고 탄탄했다. 수필은 작가의 체험을 철학적인 사유를 통하여 인생에 대한 깨달음을 얻는 문학이라는 점을 상기하며 「보름달과 빈집」, 「이번 생은 처음이라」, 「따뜻한 봄」, 「문」 등 4편의 작품을 본심에 올렸다.
  「보름달과 빈집」은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각과 문학적 형상화가 돋보였고,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스무 살 화자가 대학생활에 치열하게 적응해가는 사유와 표현력이 매우 뛰어났다. 「따뜻한 봄」은 찾아온 사랑이 짝사랑이었지만 그것을 아름답게 극복해가는 과정이 감동적이었고 문장도 수채화처럼 아름다웠으며, 「문」 은 인생의 생체시계를 화자와 어머니의 여성성을 신체리듬을 통하여 형상화해낸 수작이었다. 더불어 간결하고 단아한 문체, 인생을 바라보고 조율하는 해석능력 또한 대학생의 수준을 뛰어넘는 대작이었다고 생각한다.
  「문」을 당선작으로, 「따뜻한 봄」과 「이번 생은 처음이라」를 장려작으로 뽑는다. 수상을 축하드리며 계속 정진한다면 우리 문단을 빛낼 동량으로 성장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끊임없는 노력으로 자신은 물론 한국문학을 빛내는 작가가 되길 바란다.

백남오(동문 수필가, 문학평론가, 초빙교수)

 

10·18문학상 수필 당선 소감

  저는 말주변이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말이 길어지면 버벅거리기 일쑤입니다. 많은 사람 앞에서 말하는 건 언제나 고역으로 느껴집니다. 저만의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입을 열어 소리 내는 것 대신, 연필을 잡고 묵묵히 종이를 채워나갔습니다. 몇 년이 지나자 종이는 빼곡해졌습니다.
  10·18을 준비하며 수필을 만났습니다. 여태껏 써오던 글로 엄마 생의 조금을 담아내기로 결심했습니다. 호르몬 변화로 힘들고 아파하는 엄마를 종이에 담았습니다. 쉽지 않았습니다. 분명 폐경은 어린 제가 겪지 못 한 경험이었습니다. 어떤 아픔인지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중앙도서관을 하루 종일 서성이며 폐경에 관한 책을 읽어보았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알 수 없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엄마의 아픔을 공감하고 위로해주는 방법만이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써내려갔습니다. 쓰는 내내 고통스러워하는 엄마를 꺼내야만 했습니다. 저 또한 몇 번이나 쓰다 그만두기를 반복했습니다. 끝내 문은 완성되었습니다.
  엄마는 당선 소식을 듣고 기뻐했습니다. 어떤 칭찬보다 뿌듯했습니다. 부족한 이 글로 엄마에게 위로가 되었으니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받기만 해온 딸이 엄마에게 주는 첫 선물입니다.
  아낌없는 조언과 많은 영감을 주신 신진호 선배님께 제일 먼저 감사 말씀을 전합니다. 선배님의 가르침으로 문학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끊임없이 답해주어 감사드립니다. 또한 식구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은 경남대학보사 기자들과도 영광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당선이라는 큰 선물을 안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완성된 글이지만 아직도 미흡하고 서툰 점이 많아 보입니다. 그럼에도 당선시켜 주신 것은 더욱 열심히 하라는 응원이라고 생각합니다. 계속해서 써내려가겠습니다. 더 나은 작품을 만들겠습니다.

성유진(음악교육과·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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