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 아고라] 어둠 속 출구를 찾는 청춘들에게
[한마 아고라] 어둠 속 출구를 찾는 청춘들에게
  • 언론출판원
  • 승인 2018.12.10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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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1월 말, 서울 출장길에 특별한 경험을 했다. ‘어둠 속의 대화’라는 전시겸 공연을 관람했는데 로맨틱한 제목이 뭔가 신비로운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제목과는 달리 실제로는 완전한 어둠 속을 흰 지팡이에 의지해 길을 찾아 나오는 일종의 시각 장애 체험행사였다.

  입구에서 나누어주는 흰 지팡이를 짚고 더듬거리며 체험장에 들어설 때만 해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어둠에 익숙해져서 약간은 보일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 생각은 완전히 빗나갔다. 입구에서부터 출구까지 완전한 암흑이었고 칠흑같은 어둠 속을 우리는 흰 지팡이를 짚고 벽을 더듬어가며 걸었다. 오직 안내자의 목소리에 의지해 보트를 타고 물을 건너며 폭포를 지났다. 시장에 가서는 촉감으로 어떤 물건을 파는지 알아맞히고 카페에서 차를 마시기도 했다.

  보이지 않으니 모든 것이 서툴기 그지 없었다. 촉감으로 물건 이름 알아맞히는 게임을 할 땐 평소 늘 사용하던 물건들의 정체도 의심스러워 틀리기 일쑤였다. 심지어 익숙한 매실차도 사과 주스라고 말할 정도로, 보이지 않으니 후각과 미각까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모든 체험을 마치고 출구로 나오니 아주 적은 빛으로도 얼마나 잘 보이는지 신기하기만 했다. 달라진 것은 단지 빛이 차단되었다는 것뿐이었는데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그토록 능숙하게 우리를 안내했던 안내자가 적외선 안경을 쓴 것이 아니라 원래 시각장애인이 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둠 속에선 그녀가 정안인인 우리들보다 훨씬 능숙하고 의젓했다.

  밖으로 나온 우리는 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기업의 대표를 만나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눈에 그분 역시 시각장애인임을 알 수 있었다. 화가를 꿈꾸던 고등학교 시절 실명하여 꿈을 포기한 그는 안마사라는 직업밖에 가질 수 없는 시각 장애인들의 현실에 절망했다 한다. 피나는 노력 끝에 피아노 조율사 자격증까지 땄지만 불러주는 곳이 없었다.

  하지만 고집스럽게 여러 가지 시도를 한 끝에 독일에서 하는 이 ‘어둠 속의 대화’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고 한국에 들여와서 전시, 공연을 시도했다. 처음엔 이 낯설고 불편한 체험 프로그램이 먹힐 리 없어서 파산하고 폐업의 위기까지 갔다. 하지만 끈질기게 주변의 기업들의 문을 두드려 ‘네이버’로부터 투자를 받아서 시각장애인들을 고용하여 이 프로그램을 계속 운영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고 했다.

  현재는 시각장애인들 중심으로 50여 명의 직원들이 주 4일제로 근무하며 정안인들과 어둠 속의 대화를 나누며 빛의 참된 의미를 일깨워주고 있었다. 파산과 폐업 위기에서도 끝내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을 묻는 우리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도전하고 시도하는 길밖에 없었노라고 그는 말했다.

  나는 지금의 눈부신 성공보다 그가 보이지 않는 눈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며 겪었을 수많은 좌절을 먼저 생각했다. 수많은 시도와 더 많은 좌절 속에서 보이지 않는 눈으로 세상의 편견에 부딪혀 그는 얼마나 상처투성이가 됐을까, 이런 상황 속에서 도전하고 시도하여 비장애인들에게 시각장애를 이해시키고 시각장애인들을 그만큼이나 고용할 수 있는 양질의 일터를 만든 노력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단순히 개인의 문제를 해결한 것만이 아니라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에게까지 선한 영향력을 미친 그의 성공은 좌절에 굴하지 않고 끝없는 시도 속에서 거둔 값진 것이었다.

  나는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각기 자신들의 어둠 속에 갇혀있는 우리 학생들에게 그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었다. 또 다시 한 해가 가고 새로운 한 해를 앞두고 있는 지금, 막연한 기대를 걸었던 미래는 여전히 손에 잡히지 않고 불확실의 안개가 더욱 짙어져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어둠 속에서 서툰 걸음을 걸었던 우리들처럼 우리 곁의 젊은이들도 앞길이 보이지 않아 절망에 휩싸여 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삶은 계속되고 우리는 끝없이 새로운 시도를 해나갈 수밖에 없는 숙명적인 존재들이다. 더듬거리며 걸어도 길의 끝에 출구는 있었다. 보이지 않는 것 같지만 조금만 더 지나면 빛이 우리의 어둠을 걷어갈 것이다. 그러니 부디 힘을 내어 한 발 더 나가고 한 번 더 시도하여 각자 자신만의 출구를 발견하게 되기를.

윤은주(수필가, 국어교육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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