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근의 발밤발밤] ‘지식의 저주’(The curse of knowledge)에 걸리지 않았는지요?
[정일근의 발밤발밤] ‘지식의 저주’(The curse of knowledge)에 걸리지 않았는지요?
  • 언론출판원
  • 승인 2018.11.29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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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밀리레스토랑에 가면 젊은 친구가 무릎을 꿇고 주문을 받는다. 고객의 눈높이에 맞추는 서비스다. 고객과 눈을 맞추고 귀를 여는 자세는 주문을 받는 사람의 기본이다. 음식에 대한 세세한 소개를 곁들여 주문을 받은 뒤 마지막에 반드시 주문한 음식을 다시 확인해준다. 눈높이 서비스는 물론 패밀리레스토랑뿐 만의 일이 아니다.

  생산자(을)가 소비자(갑)의 눈높이에 맞춘다는 것은 단순한 친절만은 아니다. 기업 경영의 기본이다. 소비자는 한 사람 한 사람 개성이 강하다. 그 개성을 다 받아주는 열린 경영 자세는 기업에 신뢰와 친근감이 생긴다.

  ‘지식의 저주’(The curse of knowledge) 란 말이 있다. 2007년 스탠퍼드대학교 칩 히스(Chip Health) 교수와 동생 댄 히스(Dan Health)가 『Made to stick』 저서를 출간했다. 그 책에서 ‘지식의 저주’라는 개념을 이야기했다. 이에 대한 정의는 ‘아는 것이 많은 전문가가 되어 갈수록 일반 사람들에게 그 분야의 용어를 설명하기 어렵게 된다.’는 지적이다.

  필자는 많이 알면 쉽게 설명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언젠가 작곡하는 친구에게 좀 쉽게 작곡하라 지청구를 했더니 ‘쉽게 작곡하는 것이 제일 어렵다.’고 했다. ‘지식의 저주’가 그 말과 같은 말일 것이다.

  문학 특강이니, 인문학이니 여기저기 불려 다니는 필자 또한 똑같은 어려움을 겪는다. 강연은 관객과 만들어 내는 공감대에 따라 좋은 강연과 나쁜 강연으로 결정된다. 필자 역시 강단에 서면 모두 이해하게 설명하기가 제일 어렵다. 필자의 객석은 중학생부터 실버세대까지 관객의 스펙트럼이 크고 다양하기 때문이다.

  청년작가아카데미 강의 시절의 일이다. 한 번은 창작캠프에서 동문 선배 특강이 있었다. 마지막 질문 시간에 한 남학생이 질문을 했다. ‘그런데 신춘문예가 뭐예요?’ 특강 장소에 폭탄이 떨어진 장면이 연출됐다. 창작을 하겠다고 모인 학생인데, 이미 일 년이나 강의를 했는데도, 그 친구는 신춘문예란 말을 몰랐다.

  그건 학생을 탓할 일이 아니었다. 내 강의실의 학생들은 문학 관련 용어를 다 안다고 생각한 내 죄였다. 이른바 ‘지식의 저주’였다. 이런 예를 ‘대학 강의실’로 돌려보자. ‘지식의 저주’에 대한 피해자는 학생이다. 아무것도 알아듣지 못하는 고통은 지식이 만드는 저주다. 우리 대학에서도 2018년 2학기 현재 한마인성 1,031강좌를 포함해 3,215강좌가 진행되고 있다.

  대학 시절 연극판에 기웃 걸릴 때다. 대본 읽기에 참석했는데 주인공인 도둑이 어느 대학 교수의 집에서 강의록을 훔쳤다. 그중에서 몇 장을 훔 쳐 갔다. 강의 노트를 보고 해마다 똑같은 강의를 해온 그 노교수는 노트 몇 장을 훔쳐 갔는데도 도난 사실을 모른 채 그 부분을 빼고 강의를 했다. 엑스트라인 주제에 웃음을 참지 못해 연출가에게 쫓겨났다. 물론 1980년대 풍자극이다.

  나라의 백년대계인 대학을 비유하긴 외람되지만 대학 강의실에서 ‘갑’은 학생이다. 을이 ‘지식 의 저주’에 빠져 버린다면 ‘을’은 흥미를 잃어버린다. 우리들이 사랑하는 ‘을’을 위하여, 저주를 풀고 눈높이 교육 서비스를 깊이 생각 할 때다.

시인,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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