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근의 발밤발밤] 9월에 대한 사유
[정일근의 발밤발밤] 9월에 대한 사유
  • 언론출판원
  • 승인 2018.09.06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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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입니다. 여름이 길고 무더웠던 만큼 9월을 진실로 갈망했습니다. 8월이 물러나고 9월의 오는 첫 시간을 설레며, 잠들지 않고 기다렸습니다. 비, 번개, 천둥이 9월 첫날의 문을 열어젖혔습니다. 내륙에는 무더위가 예보됐지만, 호우주의보가 내린 남쪽 지역의 9월은 마음 깊이부터 젖어 올라오는 가을비로 시작됐습니다.

  시인이 사는 마을을 돌아 지나는 회야강에 흙탕물이 여흘여흘 흘러가고 있습니다. 여름 내내 보여주지 않던 강의 모습입니다. 드문드문 제 바닥을 드러낸 고통에 안타까운 시간이 많았지만, 물이 흐르자 현옹수 깊은 곳에서부터 울리는 기쁨의 소리가 있었습니다. 마른 우물마다 물이 차오릅니다. 9월입니다.

  9월의 ‘9’ 같은, 아라비아 숫자는 아라비안이 만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인도의 산스크리트어와 영어에서 전와(轉訛)됐다고 합니다. 영업과 계산에 숫자가 필요했던 아라비안 상인들은 이 숫자의 유럽 쪽 전달자였을 뿐입니다.

  아라비안은 수를 만들지 않고 자신의 이름을 건 것은 100% 남는 장사였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인도-아라비아’ 숫자로도 불린다니 인도의 체면이 섰습니다. 인도-아라비아 숫자는 15세기 말에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합니다. 그 수로 우리는 계산을 하고 거래를 하고 월력을 만들었습니다.

  저는 월력을 만든 1부터 12까지의 아라비아 숫자에 대해 몇 편의 시를 쓴 적이 있습니다. 11월에 대해 나무가 직립해 겨울을 향해 걸어가는 모습으로, 12월은 그 나무 아래 사람이 무릎 꿇고 경건히 기도하는 모습으로 형상한 것으로 비유했습니다. 2월은 꽁지 짧은 어린 새로 보았습니다.

  그러다 9월을 기다리다 9월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9월의 의미는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하다 나무가 다는 열매에까지 생각이 닿았습니다. 9월부터 여름을 견딘 배, 사과, 감 등의 굵은 과일을 다는 계절입니다. 9월을 아니 6월의 답도 함께 얻었습니다. 9월의 열매를 위해 6월은 꽃을 다는 달이 아닐까요.

  6월의 꽃이 9월에 이르러 열매를 답니다. 그건 또 생각이 깊어진다는 것입니다. 익은 벼가 머리를 숙이듯 9월은 사유로 제 머리가 수그러지는 달입니다. 9월의 속으로 내밀한 살과 향기가 가득 차오르기 시작합니다.

  9월을 어떻게 채우는가에 따라 10월과 11월이 다르게 읽힙니다. 9월을 채우기 위해 우리는 한 편의 시를 읽고, 책을 들고, 밤 깊도록 자신을 태워 불을 밝힙니다. 그건 지혜의 등불입니다. 먼 바다를 건너온 배를 인도하는 등대의 불빛입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과 답이 9월에 있습니다.

  그대. 9월입니다. 많이 기다린 계절입니다. 기다린 사람은 시인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9월에 9의 형상으로 서서, 혹은 9처럼 생긴 아리스토텔레스의 등불을 들고 월영캠퍼스를 밝히는 젊은 청년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시인·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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