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도 마음도 축 처지는 날씨. 동시에 나에게는 이런 더운 날씨가 되면 떠오르는 따뜻한 기억이 있다. 소중한 사람과 함께 떠났던 배낭여행이다. 어릴 적 작성했던 나의 버킷리스트에는 늘 배낭여행이 적혀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 버킷리스트의 가장 첫 줄에 ‘대학교 2학년 여름 방학에 한 달 이상 유럽으로 배낭여행’이라고 적어 놓았다.
나를 둘러싼 여러 상황들에 그 꿈을 이루지 못 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고 불안해졌다. 그 때 친구에게서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자신과 유럽으로 여행을 떠나자는 것이다. 나는 곧바로 여행을 위한 준비를 했다. 그렇게 준비하는데 6개월 이상이 걸렸고 드디어 여행을 떠나기 직전이 되었다. 설레기만 할 것 같았던 여행 전날은 오히려 두려움이 앞섰다. 경유 시간을 포함해 꼬박 하루가 걸리는 비행기, 돈을 아끼고자 선택한 저가 항공사와 호스텔, 악명이 자자한 소매치기와 인종 차별 등 모든 것이 마음에 걸렸다.
두려움을 안고 갔던 40일 동안의 첫 여행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인종 차별을 서슴없이 하던 할머니, 우리의 부름만 무시하던 식당 직원, 거리를 걸을 땐 늘 조심해야 했던 소매치기들, 잘못 탑승한 기차와 버스 등 많은 고난의 기억이 생생하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행복했고 따뜻했던 일도 생각난다. 세탁기 사용법을 몰라 식은땀 흘리던 우리에게 서툰 영어로 열심히 알려주던 아주머니,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던 우리에게 흔쾌히 맛있는 식당을 추천해준 호스텔 직원, 경유지인 중국에서 길을 찾지 못하고 쩔쩔매던 우리를 위해 바쁜 걸음을 멈추고 길을 알려주던 중국 청년. 그리고 영어 회화에 막막해하던 나를 위해 많은 부분을 도와준 나의 소중한 친구까지. 마음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 넣어준 기억은 아직까지 잊을 수 없다.
이 여행을 통해 나는 얻은 것이 많다. 인생을 살아가는 힘이 되어준 따뜻한 기억뿐만 아니라 나에 대해 돌아볼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여행을 통해 내가 어떤 음식, 풍경, 물건을 좋아하고 어떤 것에 대한 행복함, 아쉬움, 슬픔 등의 감정을 느끼는지 알 수 있었다. 불신을 담던 나의 눈동자는 여행을 끝낼 때쯤에는 따뜻함을 담을 수 있게 되었다.
청춘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아름답지만 동시에 아프기도 하고 지치고 괴롭다. 책임질 것이 점차 많아지고 그 책임감을 포기해야 하는 것도 있다. 그로 인해 점점 무거워지는 어깨에 주저앉고 싶을 때도 많아지는 그런 시기다. 그럴 때 나에게 힘이 되어주는 것은 여행의 추억이다.
그 때의 추억을 돌아보면 왠지 모를 따뜻함과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두근거림은 마치 나를 다독여주는 것만 같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도 지치고 힘들 때 친구들과의 여행을 통해 내 인생에 작은 추억들을 더하며 힘을 낸다. 세상이 너무 힘들게 할 때 한 번쯤은 훌쩍 떠나보는 용기를 낼 수 있다면 훗날 되돌아보았을 때 우리의 청춘은 조금 더 찬란해질 것이다.
임현승(국어교육과·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