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 아고라] 마음을 다스리는 일
[한마 아고라] 마음을 다스리는 일
  • 언론출판원
  • 승인 2018.08.20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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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들이 여름휴가를 맞아 다녀갔다. 1박 2일의 짧은 일정이다. 여름휴가를 며칠 앞두고 곧 만나리라는 설렘이 헤어질 땐 쓸쓸함을 더 했다.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나는 이 아들 배웅을 몹시 힘들어한다. 아들과 나는 함께 부대끼면서 산 것이 그리 몇 년 되지 않는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기숙사 생활을 한 아들은 그 길로 영영 나와 함께 살진 못했다. 그러니까 중학교까지의 생활이 함께한 전부다.

  대학을 진학하고, 군대를 가고, 대학원을 진학하고, 그길로 영영 아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특수한 날들을 제외하곤 늘 명절날의 그 며칠이 전부이지 싶다. 그러니 늘 그립고 보고 싶고 마음이 허(虛)하고 안쓰럽다.

  아들이 여름휴가를 다녀간 후 나는 허전함에 아들 방에서 며칠을 지냈다. 아들의 침대에서 뒹굴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나의 남다른 이런 태도는 내 처지와도 관련이 있다. 나는 아들이 대학원에 진학하던 해에 30년 교직 생활을 정리하고 명예퇴직을 하였다. 명퇴를 하고 나니 마음을 오로지할 곳이라고는 우리 가족의 건사가 전부다. 비워진 만큼 여백(餘白)이 넓고 허전하다. 그러니 더 생각이 많고 더 애틋할 수밖에 없다.

  아들이 다녀간 후, 홀로 점심을 먹고 나서 아들 방에 들렀다가 이 허전한 마음을 어떻게 채울까 생각하다 아들 방에다 그림 한 점을 걸었다. 한경실 화가(畵家)의 선암사 그림이다. 펜화로 단정하게 그려진 그림이다. 일체의 채색이 없이 먹으로만 된 단아한 그림이다.

  나는 이런 단아한 그림을 선호하는 편이다. 선암사의 단아한 풍경이 잘 표현되어 있다. 나는 이 그림을 보면서 내가 선암사를 찾았을 때의 그 감흥이 떠올라 저절로 마음이 단정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사람이든 풍경이든 이런 단아함은 마음조차 단아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사람살이도 이런저런 채색을 버리고 정말 한 사람으로서 단아하게 마주하는 그런 만남을 나는 선호한다. 온통 무슨 색깔을 입혀 자신을 돋보이게 하겠다고 화장(化粧)에 열중하는 세상의 일들을 나는 혐오한다. 명함에 가득 박힌 지위를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글도 수사가 화려하면 그 본래의 맛을 잃어버리고 주제가 희미해진다. 화려한 수사(修辭)에 갇혀 본심이 잘 읽히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수사가 화려한 글들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그림을 벽에다 걸며 나는 나와 아들의 서로에 대한 마음이 이 그림처럼 단아했으면 하고 생각했다. 서로의 마음에 어떤 채색(彩色)도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마음에 간직했으면 하고 생각했다. 아들의 삶도 저 그림처럼 단아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삶도 저 그림처럼 단아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저 그림처럼.

  아마 이런 생각을 가진 이가 나 하나만은 아닐 것이다. 누구나 그런 바람을 가지고 있으되 이 복잡한 세상, 살아남기 위하여 색깔을 입히고 덧칠을 하고 마음과 눈을 속일 것이다. 그러나 속인다고 속힐 세상도 아니고 덧칠을 한다고 그 속내가 보이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끝임 없이 채색을 하고 덧칠을 해 댄다. 마치 자기 속이기 시합을 하 듯 덧칠을 해 댄다. 모두 허망(虛妄)한 일이다.

  아들이 다녀간 후 이런저런 생각이 많다. 이 또한 마음에 덧칠을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림 한 점으로 이 허전한 마음을 채워 보겠다고 나서는 일 또한 마음을 채색하는 일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세상에는 변하지 않는 것도 있으니 내 마음의 기도처(祈禱處) 하나를 마련한다 생각하고 보면 이 또한 의미 있는 일 아니겠는가. 허전한 마음을 채우는 일 아니겠는가. 내 기도(祈禱)가 그 마음에 가 닿기를, 내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그림 한 점에 마음을 모은다. 

성선경(동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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