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최치원 漢詩 수다』를 발간했다. 이 책은 고운학연구소 연구원들이 지난 2년 동안 고운 최치원 선생의 시를 탐구한 수다삼매의 기록이다. 고운 선생의 시를 읽으면서 시어의 절묘한 선택에 감탄하고, 그가 나눈 우정의 깊이에 감동하고, 시대의 바람에 흔들리던 시인의 고뇌를 느끼며 함께 탄식하고, 그의 눈에 담긴 자연과 풍경 위에 우리의 마음을 실어 시간여행을 즐긴 기록이다.
경남대학교는 최치원 선생의 소요지인 월영대가 바라보이는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그가 가야산으로 은둔하기 전에 살았던 별서 유적과 조선시대 유학자들이 선생을 제사하던 월영서원이 이곳에 있었다. 그러니 대학 캠퍼스 자체가 고운 선생의 정신이 담긴 역사유적지인 셈이다. 인문대학 건물 명칭이 ‘고운관’이고 건물 뒤의 숲길 이름이 ‘고운 길 미운 숲’이다. 모두 선생의 인연을 따라 붙인 이름이다. 이 고운관 5층에 고운학연구소가 있다. 2015년 연구소 개소식 때 연구소 앞의 옥상 정원에서 가든파티로 멋을 냈던 기억이 엊그제 같다. 우리 연구원들의 최치원 시 읽기는 고운의 정신을 품은 이곳에서 마음에 달빛을 품고 매달 쉼 없이 계속되었다.
<조어정> 시를 해석할 때, ‘飛鸚鵡’를 ‘앵무가 날다’로 직역할지 ‘앵무잔이 날다’로 해야 할지 토론했다. 우리는 이 세 글자를 어떻게 해석하면 가장 시의 원래 맛에 가까울지 토론하면서, 앵무조개로 만든 술잔의 역사와 우리 고전문학에 담긴 ‘앵무’의 비유들을 찾고 토론했다. 또 술이 가득 찬 술동이를 곁에 둔 정적인 풍경을, 술잔이 공중을 오고 가고, 기녀의 옷자락이 바람에 나부끼는 역동적인 풍경으로 개작한 시인의 재치에 감탄하기도 했다. ‘驟…雪霜’을 ‘폭설과 서리를 뒤집어쓰다’로 해야 할지 ‘눈서리로 휘날리길’이라고 해야 할지 ‘눈보라가 휘몰아치는’으로 해야 할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우리 연구원들의 수다는 자꾸 깊어졌다. 한 편의 시와 어절 하나를 두고 수다를 이어가면서 고운 선생의 시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어 갔다. 연구원 중에 나무해설사가 있어 최치원의 시에 담긴 나무를 찾아가고 나무의 생태에 대해 해설을 들으면서 최치원이 바라보았을 나무의 의미에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었다. 시에 담긴 언어로 나무를 읽는 것은 책 속의 풍경인 ‘권리풍광(卷裡風光)’이지만 직접 나무를 만지고 바라보면서 시를 읽는 것은 ‘본지풍광(本地風光)’이다. 어느 편이 본질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또 한문을 잘 번역하는 연구원은 번역의 오류를 잘 찾아주어 한층 세련된 번역으로 이 책을 낼 수 있었다. 번역은 시상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노력의 결실이다. 때로는 아무리 해도 번역이 어색해서 힘들었던 때도 있었다. 추사 선생이 선시 한 구절을 소개하면서 “번역하지 않고 그냥 읽는 것이 낫다. 번역하면 비단을 뒤집어 놓는 격이다.”라고 했던 말을 실감했던 순간도 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더 가까이 시인의 마음에 다가가려고 노력했고 감상자의 시선으로 시인의 생각을 풀어보았다. 교수들의 수다는 자주 시인에 대한 탄성으로 표현되었다. 시를 읽는 동안 그의 일생이 파노라마처럼 우리 앞에 펼쳐졌다. 그래서 이 책은 『삼국사기』나 기타 문집에서 다 설명되지 못한 최치원의 사상과 정서와 생활의 면면을 채워주는 역사 기록의 보완이 되리라 자부한다.
노성미(국어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