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나는 사람을 좋아하고 그의 삶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마음에서 소설을 연구하고 교육하는 길을 선택했다. 소설가는 단순한 이야기꾼이 아니다. 그들은 문학 작품을 통해서 우리 삶과 관련된 무언가를 이야기하고자 하는데 이것이 바로 ‘주제’이다. 그리고 연구자는 그 주제에 관하여 작가와 대화를 나누는 존재이다.
내가 선택한 대화의 방법론은 ‘서사주제학’이다. 작가는 작품 속에 특정한 소재, 모티프, 원형, 상징 등을 설치해 놓고 이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데, 서사주제학은 바로 그러한 장치를 통해 작품을 해석하는 연구 방법론이다. 이를테면, 작품 속에 나타난 꿈, 죽음, 전쟁, 권력, 불 등 다양한 모티프들은 작품 해석에 접근하는 열쇠들이고, 연구자는 이 열쇠를 들고 작품에 접근한다.
학위 논문 시기 나는 이태준에 이끌려 그의 작품들을 브룩스의 ‘욕망’ 이론을 통해 연구하였는데, 이 역시 넓은 의미에서 서사주제학의 범주에 들어간다. 이후 나는 특정 작가를 떠나 특정 주제를 중심으로 한 연구로 옮겨 갔는데 그 주제가 바로 ‘치매’다. 현대사회에서 인간 삶을 재조명하는 데 매우 유의미한 주제이지만 학계의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주제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시기부터 본격적인 서사주제학의 연구에 입문하였다고도 하겠다.
나는 이 ‘치매’ 서사 연구를 지금까지 10여 년간 이어오고 있다. 굳이 분류한다면 「모녀 서사를 통해 본 ‘치매’의 상징성 연구」, 「현대소설에 나타난 ‘치매’의 의미」, 「박완서 노년문학에 나타나는 질병의 의미」 등의 논문에서 ‘치매’ 모티프가 주제를 형상화하는 방식에 대하여 논의하였다면, 이후의 「이승우 치매 모티프 소설의 이야기 정체성 고찰」, 「조경란 치매 서사에 나타난 이야기 정체성」, 「치매인 서술의 치매 서사 고찰」 등에서는 리쾨르의 이야기 정체성의 이론을 활용하여 보다 확대된 시각에서 ‘치매’ 모티프를 이해하고자 하였다.
문학이 인간의 삶에 대한 이야기인 만큼, 나는 문학 연구의 대중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전의 저서 『엄마도 엄마가 필요하다_문학이 만난 치매 이야기』나 사회학적인 관점의 <한국문학은 치매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세계인문학자 대회의 발표) 등은 그러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어쩌면 이후 최근까지 나의 연구는 이처럼 서사주제학과 대중화라는 범주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나는 ‘신앙’이라는 모티프를 중심으로 『나의 오래된 연인_문학 속의 신앙 이야기』를 발간하였는데, 작품 자체에 대한 본격적인 탐구였던 이전의 연구와는 다르게 신앙이라는 주제 하나로 대중들과 소통하고자 한 글이다. 37편의 한국 현대소설 속에 나타난 ‘신앙’의 모습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는 문학 연구라는 전문 분야를 보다 대중적인 영역으로 옮겨 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도 나는 서사주제학의 연구를 지속해 나갈 계획이다. 현재 연구 과제는 ‘치매’ 모티프 서사의 연장선상에서 죽음에 관한 연구이다. 노년소설의 핵심적인 주제인 ‘죽음’은 치매의 세계에서는 새로운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다. 이 둘의 상관성에 대한 호기심이 이 최근 연구의 동기이다. 언젠가 그 성과가 축적되면 또다시 그 이야기를 대중과 나누고도 싶다.
김은정(국어교육과 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