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 아고라] 슈테델 미술관(Stdel Museum)의 풍경 하나
[한마 아고라] 슈테델 미술관(Stdel Museum)의 풍경 하나
  • 언론출판원
  • 승인 2024.04.03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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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첫 유럽 여행이 마무리되는 날, 프랑크프루트에는 비가 내렸다. 비 내리는 2월의 흐린 하늘은 여행자의 객창감을 부채질했다. 비는 옹색한 우산과 떠남이 아쉬운 마음을 함께 적셔 몸도 마음도 후줄근히 젖었지만 마지막 일정을 포기할 수 없었다. 신·구 유럽이 공존한다는 뢰마 광장을 가로질러 구글 지도를 보며 슈테델 미술관을 찾아 나섰다. 생각 같아서는 어디 카페에서 한적하게 비 내리는 독일 거리를 내다보며 차나 한잔하다가 느긋하게 돌아오고 싶었다. 하지만 짧은 여정에 체코와 독일 두 나라를 둘러보는 빠듯한 일정에도 ‘언제 다시 여기 오겠는가’하는 아쉬움에 지치는 몸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슈테델 미술관은 마인 강가의 박물관 거리에 자리했는데 은행가 슈테델의 기부로 1815년에 설립됐다. 당초 기부받은 것은 700점이었지만 현재는 데생 2만 5,000여 점, 회화 6만 5,000여 점, 조각 600여 점 등 10만 점에 가까운 소장품을 자랑하며 프랑크푸르트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미술관으로 성장했다.

  미술관으로 가는 길, 박물관 거리라는 이름에 걸맞게 거리에는 갖가지 박물관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여행객들을 유혹했다. 그리고 한 시간여의 발걸음 끝에 한눈에 딱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웅장하고 고풍스러운 외관을 지닌 미술관에 도착했다. 입구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작품의 수준과 규모에 주눅이 들었다. 미술사 수업과 학창 시절의 미술 교과서에서 익히 보아왔던, 낯익은 작품들이 즐비했다. 몇 개인지 헤아리기도 힘들 만큼 다양한 전시실에서 근·현대를 아우르는 셀 수 없이 많은 작품들에 눈 둘 곳을 찾지 못할 지경이었다.

  입구의 삼엄한 경비와는 달리 일단 미술관에 들어서고 나니 작품을 사진으로 찍는 일은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휴대폰 메모리가 큰 것이 감사하다 할 만큼 많은 사진을 찍고 실컷 눈 호강을 하는 중에 낯선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한 무리의 아이들이 커다란 그림 앞에 자유롭게 눕고 또 앉아서 미술 수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선생님의 질문과 아이들의 대답이 한동안 이어졌고 하나의 그림 앞에서 오랜 시간을 토론한 뒤 다음 그림으로 옮아가며 수업은 계속되었다.

  한눈에도 그림의 크기가 100호 이상은 되어 보였는데 그 앞에서 아이들은 거대한 색채의 바다 앞에서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자유롭고 행복해 보였다. 아이들의 행복한 미술 수업 풍경을 보면서 우리들도 어린 시절에 그런 경험을 가졌더라면 더 행복한 예술의 향유자로 자랐을 텐데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예술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소유를 내놓을 줄 알았던 슈테델이 진짜 원했던 것은 바로 그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초상화 속에서 아이들을 내려다보고 웃고 있었다.

윤은주(수필가, 꿈꾸는산호작은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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