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근의 발밤발밤] 연극을 본 적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정일근의 발밤발밤] 연극을 본 적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 언론출판원
  • 승인 2024.03.20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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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생애 처음, 20대 초에 본 연극이 ‘관객모독’이었다. 대학에 입학하고 난 후의 일이었다. 그때 우리 대학엔 ‘극예술연극회’란 연극 ‘서클’이 있었다. 지금의 동아리를 서클이라 부르던 시절이었다. 문학 동아리에서 창작활동을 하고 가끔 시화전이나 시 낭독을 했던 나는 연극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연극 연출가로 활동하던 선배가 초대한 연극을 보러 갔는데, 그 연극이 관객모독이었다.

  연극 관객모독은 오스트리아의 극작가 페터 한트케(1942∼) 작품이다. 그의 나이 24살 때인 1966년 초연된, 그의 초기작품인 관객모독은 희곡 사에서 ‘가장 도발적인 작품’ 중의 하나다. 연극 보러 갔다가 무식한 관객이란 욕 듣고 배우가 관객에게 뿌리는 물까지 덮어썼다. 제목 그대로 배우들이 퍼붓는 관객에 대한 모독이 연극의 주제였다.

  배우와 객석의 관객이 실제로 싸우는 일이 일어날 정도로 욕 듣고 화가 나는 연극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 연극을 보고 정신적으로, 예술적으로 성숙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막연했던 연극과 희곡이 선명하고 뚜렷하게 다가왔다. 페터 한트케는 세월이 흘러, 문학을 한다면 피해 갈 수 없는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 대본의 공동 집필자로 만나 반가웠고 그가 2019년 노벨문학상을 받는 것을 보았다. 

  강의 시간에 학생들에게 연극을 본 적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대답은 예상했던 대로였다. 봤다면 교회에서, 혹은 약장수 연극 정도였다. 정통 연극인 ‘정극’(正劇)에는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대학에서도 연극 하는 동아리는 오래전에 사라졌다. 문학의 장르에 희곡이 엄연하게 존재하지만, 영화나 TV 드라마에 밀려 사라져 버렸다.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플랫폼으로 사용자가 원할 때 언제나 어디든 방송을 보여주는 VOD 서비스 시대에 연극 타령은 ‘꼰대의 소리’일지 모른다.

  그래도 나는 ‘연극을 보라!’고 청년들에게 권한다. 마침 우리 대학 김종원 교수(문화콘텐츠학과)가 연출을 맡은 ‘스푼페이스 스타인버그’라는 좋은 연극이 우리 지역 오동동에 있는 ‘소극장 빨간객석’에서 상연되고 있다. 우리에게 친숙한 무용수를 꿈꾸던 11살 탄광촌 소년의 꿈을 담은 ‘빌리 엘리어트’를 쓴 영국 극작가 리 홀(1966∼)의 작품으로, 미성숙아로 태어나 자폐증으로 살아가던 7살 소녀가 암 투병을 통해 보는 죽음에 대한 시선이 따뜻하게 그려진 연극이다.

  연극이 무엇인지, 영상과는 달리 객석에서 무대의 배우와 같이 호흡하며 느끼고 배우는 감동이 있을 것이다. 연극에 몰입하다 보면 어느새 자기 자신이 연극의 주인공이 된 듯 빠져드는 감동은 ‘덤’이다. 매주 금, 토요일에 상연하는 이 연극은 3월까지만 진행된다. 아직 4번의 공연이 남아있으니 기회가 되길 바란다.

  어차피 인생은 연극이다. 연극을 알면 인생을 이해하고 설계하는 데 도움이 된다. 자신이 출연하는 연극은 그 주인공이 자신이지 않은가! 그런 경험도 없이 인생이란 연극의 주인공을 맡는다면, 오히려 객석의 관객이 주인공인 당신을 모독하는 일이 생길지 모를 일이다.

석좌교수, 청년작가아카데미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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