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를 떠나온 뒤 고래와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 든다. 마산에 바다가 있지만, 마산 밖으로 나가면 남해 바다가 펼쳐지지만 고래 떼가 항진하던 동해와는 분위기가 자못 다르다. 회유하는 고래들은 동해를 지나, 남해를 거쳐 서해까지 진출한 기록이 있지만, 고래의 본향은 동해다. 거친 바다를 헤치고 나가는 힘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바다의 빛도 검푸른 동해가 고래의 색과 닮았다.
이런 가운데 SBS가 창사특집으로 제작한 다큐멘터리 ‘고래와 나’를 방송해 비어가던 내 가슴에 고래들이 가득 차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모두 4부작으로 제작된 ‘고래와 나’는 지난달 18일 1부 ‘머나먼 신비’가, 25일에는 2부 ‘고래의 노래를 들어라’, 지난 3일에는 3부 ‘거대한 SOS’가 방송됐다. 오는 10일에는 4부 ‘고래가 당신에게’가 방송될 예정이다.
방송사 측에 따르면 ‘고래와 나’는 ‘친근하면서도 베일에 싸여있는 동물 고래를 국내 최초 8K 초고화질 수중촬영으로 생생히 전달한 다큐멘터리’라고 소개하고 있다. 총 20개국 30개 지역에서 고래들을 추적하며 촬영한 이 다큐멘터리는 한국 방송 사상 최대의 작품이다.
3부까지 본 방송으로는 세계에 고래가 사람과 평화롭게 지내는 바다가 많은데 우리나라의 고래 현실은 심각한 바다 오염과 촘촘한 그물, 설치는 불법 포경으로 여전히 암울하다. 지난 3일 방송된 ‘거대한 SOS’는 지난 3월 23일, 전라북도 부안군 하섬에서 새끼 고래 한 마리가 죽은 채 발견됐다. 그 고래가 지난 20년 넘게 한국에서 발견되지 않았던 희귀종인 ‘보리고래’였다.
보리고래(Sei Whale)는 보리가 누렇게 익어갈 때 자주 나타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긴수염고랫과로 몸길이 12∼15m로 멸치고래, 정어리고래라고도 부른다. 보리고래의 죽음에 사망 원인을 밝히기 위해 수십 명이 넘는 연구자들이 모여 과학 부검을 진행하면서 고래의 몸속에서 하나둘 ‘다잉메시지’들을 발견한다. 그건 고래의 SOS이면서 결국 바다의 경고였다.
지난 여름방학 때 지역의 중·고교 학생들과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후원의 시 창작 교실을 가졌다. 그때 우리의 주제가 고래였다. 한 학생이 고래의 노랫소리를 듣고 쓴 시에서 ‘깊은 바다 아래서/노래를 부르는,/가장 외로운 고래는/자신을 알리기 위해/소리를 낸다’라고 노래했다.
우리 바다는 고래의 무덤으로 변해가는지 모른다. 죽어가는 고래들이 슬픈 노래를 우리에게 보내고 있는지 모른다. 고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바다에 고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청년들에게 고래에 관한 관심을 부탁한다. 가슴에 고래 한 마리 키우지 않으면 청년이 아니라고 어느 시인은 노래했다. 방송사의 다시 보기를 통해서 1, 2, 3부를 보고, 오는 10일 마지막 방송 ‘고래가 당신에게’의 시청을 통해 고래가 전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길 바란다. 청년들이 고래를 사랑해야만 미래의 바다에 고래가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석좌교수, 청년작가아카데미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