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자’는 슬로건을 들으면 흘러간 유행가 같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4차 산업혁명은 이미 시작되었다. 혁명군은 생활 깊숙이 진주해 왔다. 혁명에 대비하자는 뒷북치는 헛구호는 늦었다는 것이다. 가전제품에 부착된 AI(인공지능)가 개인과 가정까지 점령했다. 휴대폰에, 카메라에, 구글 제공 서비스에 AI가 들어가 주인을 척척 도와주고 있다.
서울 강남에 있는 LG전자 베스트샵에서는 음성으로 작동되는 TV와 가전 제어를 직접 체험할 수 있다고 한다. LG는 ‘씽큐’(ThinQ)라는 인공지능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 이 씽큐와 스마트폰 앱을 연결한 ‘스마트 씽큐’, AI 스피커와 연결한 ‘씽큐 허브’로 사람의 음성으로 모든 가전이 작동되도록 했다. TV, 공기 청정기, 에어컨, 로봇 청소기, 스타일러 등이 사람의 목소리에 자동으로 움직인다. 미래의 가정은 이보다 더 진화한 AI가 하우스 키퍼를 대신할 것이다.
결혼을 앞둔 청춘은 부모가 쓰고 있는 구세대 가전을 혼수로 마련하지 않는다. 스스로 알아서 작동하는 위와 같은 AI 가전으로 혼수를 마련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은 가까이, 나와 내 가정부터 점령해 상용화되고 있다. 가격을 걱정하는 청춘들이 있을지 모른다. 걱정할 일은 아니다. 하루가 다르게 더 좋은 기능을 가진 더 저렴한 AI 가전이 쏟아질 것이다. 그 경쟁에 중국제 AI가 합세할 것이다.
어릴 때 일이다. 집에서 구독하는 신문의 해외 토픽 코너에서 ‘전자시계’가 나올 것이라는 기사를 읽고 신기해 했다. 시침, 분침을 가진 아날로그 시계만 보아 왔던 필자는, 숫자로 시간과 분을 나타내는 전자시계의 미래가 요술 같았다. 기대는 얼마 가지 않아 실현됐다. 그 기대가 중국 때문에 일찍 끝이 났다. 길거리 노점에서 3개에 천 원 하는 중국제 전자시계를 만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AI가 중국제라 해서 4차 산업혁명이 천 원에 3개 하는 전자시계처럼 추락할 것이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중국이 예전의 중국이 아니다. 중국의 3대 인터넷 기업인 알리바바, 바이두, 텐센트가 AI에 대해서 미국에 자금과 기술로 맞서고 있다. 바이두는 3년 내 AI 인재 10만 명을 배출한다고 한다.
세계 AI 시장을 보면 한국은 아시아에서도 후진국이다. 중국 AI가 한국으로 몰려들고 있다. 그러나 예전의 단돈 천 원에 3개 하는 전자시계 장면을 연출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은 중국과 전쟁을 하지도 못하고 AI 예속 국가가 될지 모른다. 대학이 살아남기 위해 AI는 필수적이다. 그런데 대비만 하면 뭐하나. AI의 원동력인 빅데이터가 어디까지 왔는지 살펴보면, 이 혁명에서 우리가 중국에 따라갈 수 없다는 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혁명에는 공약이 있다. 혁명으로 위장했던 5·16 군사 쿠데타 혁명 공약은 이랬다. ‘반공(反共)을 국시의 제1의(第一義)로 삼고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친 반공 태세를 재정비 강화한다.’ 4차 산업혁명에는 혁명 공약이 없다. 국경이 없다. 이념이 없다. 안개처럼 빠르게 스며든다. 대비하기에 늦었다. 당장 투자해야 한다. 예산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시인,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