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지역 인물(6)-마산 지역 항일 운동가, 석당 변상태(石塘 卞相泰, 1889~1963)
이달의 지역 인물(6)-마산 지역 항일 운동가, 석당 변상태(石塘 卞相泰, 1889~1963)
  • 언론출판원
  • 승인 2018.06.05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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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지역 인물’ 그 여섯 번째 주인공으로 석당 변상태 선생을 선정했다. 석당 선생은 마산합포구 진전면 출신으로 항일 독립 투사였다. ‘이달’은 2018년 6월, 7월, 8월 세 달을 가리키고, 8월 하면 조국의 광복을 생각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 이달의 지역 인물 선정위원회
석당 변상태

  석당은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양촌리 출신의 항일 운동가이다. 그는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16세 나이에 의병 운동을 계획하기도 하였다. 1908년 부산상업학교에 입학해 학업보다는 대붕회를 조직하는 등 항일 투쟁을 더 열성적으로 했다.
  항일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1915년에 조직된 조선국권회복단 단원으로 참여하였고, 1917년에는 비밀결사 대동청년단에도 가입해 모험부장으로 활동하였다. 특히, 마산 지역 4·3삼진의거에서 석당은 항일 독립운동의 전술가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 주었다.
  1919년 ‘뜻이 관철되지 않으면 죽음도 불사한다’라는 의미의 아사동맹회를 만들어 활동했고, 곡물 거래 등으로 독립운동 자금 모집에도 힘을 쏟았다. 1922년 조선의열단 이종암을 만나 일제 왕실과 귀족 암살을 제의하기도 했다. 당시 석당은 축지법을 쓴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로 신출귀몰하게 항일운동을 펼쳤다고 한다. 1944년 8월 조선의열단의 구여순을 비롯해 11인의 동지와 고려구국동맹회를 조직하여 활동하기도 하였다.
마산 지역을 중심으로 조국 광복 운동을 펼쳤던 석당은 지칠 줄 모르는 모험가적인 항일 전술가로서 그의 삶과 활동은 항일 독립운동사 한가운데에 우뚝 서 있다.

  4·3삼진의거의 주역, 광복을 외친 석당

  석당 변상태는 1919년 3월 1일 서울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고,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와서 마산 지역의 권영조·권영대·변상섭 등과 함께 만세 시위를 계획하였다.
  그는 3월 28일 고현 장날에 앞장서서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고, 독립선언서를 나누어 주면서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시위대가 일제의 탄압으로 해산되자 그는 다시 4월 3일 만세 시위를 준비하였다.
석당은 4·3삼진의거에 참여한 진전면·진북면·진동면에서 모여든 수천 명이 넘는 군중 앞에서 항일을 목이 터지라고 외쳤다.

  “대한 동포여! 창원 삼진면민이여! 민족 독립의 횃불을 들 때가 왔다. 우리가 독립하지 못하면 영원히 개·돼지의 처지를 면치 못할 것이며, 이는 후손들에게 말 못할 후환을 끼치는 결과가 되느니 지금이야말로 우리는 항일 독립의 전선으로 궐기할 때이다.”
  “오늘부터 우리는 자유 민족이며 자유국의 국민이다. 일본의 간여는 추호라도 받아서는 안 된다. 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독립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싸워야 한다.”

  석당이 먼저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니, 삼진 의거에 참가한 수천 군중의 대한 독립 만세 소리가 마산 지역에 울려 펴져 나갔다.

4·3삼진의거 순국자인 팔의사 묘
4·3삼진의거 순국자인 팔의사 묘

  석당의 마산 지역 동지들

  나라 잃은 시기 마산 지역을 중심으로 항일운동을 펼쳤던 석당 곁에는 항일운동 단체와 그와 뜻을 같이하는 유·무명의 동지들이 많이 있었다. 그중에 4·3삼진의거에 참여해 일제의 총탄에 순국한 김수동·변갑섭·변상복·김영환·고묘주·이기봉·김호현·홍두익 등 팔의사는 석당의 동지 중에 가장 기억되는 동지로 손꼽지 않을 수 없다.
  석당 변상태는 1917년에 조선국권회복단에 가입하여 적극적인 항일운동을 펼쳤다. 이 단체는 윤상태·서상일·이시영 등을 중심으로 1913년에 대구에서 결성되어 1919년까지 활동했던 비밀결사였다. 주로 군자금을 모집하였고, 경상도 곳곳의 3·1독립운동을 주도하였던 대표적인 항일운동 단체였다.
  조선국권회복단 마산지부에는 지부장 안확을 비롯하여 이형재·김기성·배중세·이순상 등의 동지가 있었다. 이들은 불우사, 원동상회, 환오상회 등의 곡물 무역상회를 운영하며, 석당과 함께 독립 군자금 모집과 정보 연락 임무를 수행하였던 항일 동지였다.
  또한, 석당은 대동청년단 모험부장으로도 활동하였다. 이 단체는 백산 안희제가 1909년 10월에 서상일·남형우 등과 함께 결성한 항일 조직으로서 1945년 8월 15일 광복 때까지 인재 양성, 군자금 조달 등의 목적으로 활동한 비밀 독립 운동 단체였다. 이 단체에서도 조선국권회복단 마산지부 이형재·배중세가 석당과 함께 항일 운동을 펼쳤다. 특히 배중세는 김원봉의 조선의열단 단원으로 1920년 3월 밀양경찰서 폭파 계획에도 참가한 석당의 대표적인 동지였다.
  일제강점기 석당과 함께 항일운동을 펼쳤던 배중세 등 석당의 동지는 항일 민족 운동사에서 길이 남을 인물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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